유도분만에서 제왕절개까지
짧게 눈을 붙인 뒤 병원에 전화를 걸자 자리가 있으니 삼십 분 내에 와서 내진을 받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혼자 쭐레쭐레 갔다.
또다시 고통스러운 내진 후 자궁 문이 3cm가량 열렸으니 풍선 제거 후 오늘 유도 분만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해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미리 준비해 둔 출산 가방과 아침을 챙겨 오라고 시켰다.
남편이 병원에 도착하자 개인 분만실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출산과 관련하여 꼭 원하는 사항이 있냐고 묻길래 난 무통주사(에피듀럴)를 꼭 맞고 싶고, 출산 후 태반을 보여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원래 네덜란드에서는 출산 시 편한 옷을 산모가 직접 들고 와 입는다길래 나도 남편의 낡은 티셔츠를 챙겨 왔는데, 간호사가 무통주사를 맞을 때 뒤가 열리는 환자복이 편하니 애초에 환자복으로 입고 있으라며 병원 옷을 주었다.
그 뒤 링거를 맞기 위해 주사 바늘을 꽂아야 했는데 내가 긴장하면 혈관이 확 좁아지는 체질이라 바늘을 무려 5번이나 꽂은 뒤에야 라인이 잡혔다. 그래서 양팔에 심한 멍이 출산 후 3주나 지속되었다.
새로운 간호사가 와서 또다시 내진 후 양수를 터뜨렸다.
내가 이전 내진에서 너무 고통스러워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숙련된 간호사가 능숙하게 내진을 해주어 이때가 제일 고통이 덜했다. 그리고 양수 양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러웠다. 강아지 배변 패드 2개를 푹 적신 뒤에도 양수가 몇 시간 동안 계속 흘러나왔다.
병원 입원 서류를 작성하고 진통을 촉진시키기 위해 집에서 가져온 메디슨 볼을 타고 싶었는데 양수가 무지막지하게 나와 포기하였다.
이때 당일날 먹을 점심과 저녁 메뉴를 정해서 병원에 알려주었다. 결국 이 날 점심과 저녁 둘 다 먹지 못 하였다.
옥시토신 투여를 시작했다.
규칙적이지만 고통스럽지 않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간간이 느꼈던 가진통과 비슷한 수준으로 약한 생리통 같은 느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서있으려다가 양수가 미친 듯이 흘러서 샤워를 했다.
병실 화장실에 샤워기가 있는데 샴푸와 바디워시가 없어서 제대로 씻을 수 없었다. 목욕 용품을 챙겨 오지 못한 게 너무나 후회되었다. 네덜란드 병원에서 출산하는 다른 분들은 꼭 챙겨가시길 바란다.
옥시토신 투여량을 늘리면서 진통의 강도가 점차 높아졌다.
갑작스럽게 진통 강도가 매우 높아져서 무통주사를 맞고 싶다고 간호사 콜을 했다.
콜을 하고 간호사가 5분 여 뒤에 느릿느릿 오더니 이제 와서 무통주사 부작용을 정리해 둔 서류를 들고 와 천천히 하나하나 읊어주기 시작하였다. 병실에 들어올 때부터 무통 주사를 맞고 싶다고 했는데 왜 이제야 부작용 설명을 하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부작용 리스트를 읊는데 다 괜찮고 동의하니 당장 무통주사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그럴 수는 없다고 끝까지 리스트를 읊은 뒤에 또 느긋하게 병실로 돌아와 마취과 의사가 현재 다른 수술 중이니 무통 주사를 맞으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자기도 알 수 없다고 대답 후 매정하게 병실을 나가버렸다.
진통은 굉장히 괴로웠다. 유도 분만이라 강도가 더 심했고, 두 시간여 동안 자궁 문이 추가로 3-4cm가 빠르게 열렸기도 했다. 진통이 오면 아무 생각을 못 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웠고, 진통 강도가 살짝 내려가기 시작하면 벌써 1분 뒤에 올 다음 진통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무통주사를 기다리며 미리 대여했던 TENS 기계를 등에 붙이고 진통이 올 때마다 버튼을 눌러 사용했다. 몸에 붙인 패치로 전류를 흘려 다른 고통을 줌으로써 진통에 둔감하게끔 해주는 기계인데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아서 진통 오는 내내 기계 리모컨만 꽉 쥐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난 뒤 남편이 기계를 조립해서 패치를 붙여줬는데 조립이 은근히 오래 걸리므로 미리 설명서를 보고 조립을 해서 병원에 들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진통 겪느라 죽겠는데 남편이 설명서를 보면서 기계를 조립하는 걸 보면 쌍욕이 목구멍까지 나온다. ^^
출산 전에 호흡법을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해서 갔었는데 개인적으로 호흡법은 통증 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차라리 짐승처럼 울부짖는 게 내 고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고 느껴져서 나았다.
고통 강도는 1에서 10으로 표현하자면 8-9 수준이었다.
드디어 다른 수술이 끝나고 마취과 선생님이 무통 주사를 놔줄 수 있다고 수술실로 올라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수술실은 한 층 위에 있었는데 수술실까지 이송되는 동안 너무 아파서 눈도 제대로 못 떠서 엘리베이터에 탔다는 사실만 인지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수술실로 실려가서는 무통 주사를 맞을 때까지 또다시 한참 기다려야 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와서 무통 주사를 놔주었다. 진통이 끝났다고 말해주면 주사를 놓기 때문에 진통 때문에 몸을 움직이다가 주삿바늘이 잘못 꽂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번에도 주사를 잘못 놨다고 두 번 찔렸지만 무통 천국을 기대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무통 주사를 맞으려면 옥시토신 투여량을 늦춰야 돼서 에피듀럴이 들어오기 전부터 진통이 훨씬 견딜만했다. 기분 나쁜 차가운 감각과 함께 에피듀럴이 투여되었고 그제야 내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술실 간호사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들어온 수술실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편안하게 나가면서 가족한테 무통천국과 현대 의학 만만세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고통이 사라지니 분만실로 돌아가는 길도 구석구석 구경하며 편안하게 왔다.
무통 주사를 맞고 나니 진통이 오고 있다는 것은 허리와 아랫배가 뻐근해서 인지할 수 있지만 고통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이후 내진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약 1 수준)
소변줄을 끼우고 자궁 문이 6cm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통주사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안내받았던 대로 가슴 피부가 가려웠고, 이건 출산 후에도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진통이 올 때마다 자궁과 함께 대장이 수축하는지 방귀대장 뿡뿡이가 되어버렸다. ^^.... 사람 몸속에 이렇게 많은 가스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출산 직전까지 방귀가 끝도 없이 나와서 분만실에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방귀를 참기 위해 힘을 주느라 혼났다.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스태미나를 위해 집에서 가지고 온 프레첼을 먹었다.
진통 빈도가 낮아졌다고 자세를 옆으로 변경하라고 안내받은 뒤 옥시토신 투여량을 높였다.
옥시토신 투여량을 다시 늘렸고, 진통이 올 때 변의가 약간씩 느껴졌다.
옥시토신 투여량을 늘리고 에피듀럴도 보충하였다.
자궁문이 아직 7cm만 열렸으니 아래에 힘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에피듀럴 양이 늘어나서인지 진통 강도와 변의가 모두 살짝 줄어들었다. (1.5 수준)
이쯤 되니 지난 이틀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과 프레첼 말고는 먹은 것이 없어 상당히 지치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졸린데 진통이 욱신욱신하게 오고 (3 수준) 변의도 돌아와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편은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자는데 정말 부럽고 짜증 났다.
살짝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간호사한테 말하니 토할 수 있는 1회용 플라스틱 큰 컵 같은 것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십여분이 지나자 토를 하고 환자복을 갈아입었다. 놀랍게도 임신 기간 동안의 처음이자 마지막 토였다.
열이 나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제정신이 아니라 더 이상 실시간으로 기록을 할 수 없었다.
너무 어지러워 저녁 식사도 필요 없다고 했다.
이후로는 간호사들이 꾸준하게 내 체온과 심박, 아기 심박, 그리고 자궁문 열린 정도를 체크했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면봉 테스트 후 받은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었다.
출산 후 감염 테스트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꽤 열이 높아서 아마 검사상 수치로 안 나왔을 뿐 감염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산후 검진에서 의사에게 안내받았다.
내 열은 내려갔으나 태아 심박수가 빨라 제왕절개가 필요할 수 있으니 더이상 물과 음식을 섭취하지 말라는 안내를 받았다.
자궁문이 더 열리지 않아 딱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8cm까지 자궁문이 열리면 베큠으로 질식 분만을 시도해 보고, 그래도 자궁문이 그대로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알겠으니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겠다고 간호사한테 내 의사를 전달하고 가족한테도 업데이트를 해주었다.
역시나 자궁문은 더 열리지 않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내 병실로 처음 들어와서 제왕절개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질문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때 임신 이후 최초로 산부인과 의사와 만났다. 대단하다 네덜란드....
제왕절개를 하러 아까 무통주사를 맞았던 수술실로 다시 올라갔다.
무통으로 마취약을 추가하고 수술실 앞에서 내 수술을 맡을 의료진들과 남편과 함께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앞서 아이는 피를 어느 정도 닦은 뒤에 내게 보여주고, 태반은 보여주지 말 것을 다시 한번 부탁하였다. 내 요구사항을 들은 남자 의료진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이도 태어난 직후 그대로 보고 싶어 하고 태반도 꼭 보고 싶어 하는데 외국인들은 다르다며 피식 웃었다. 이 사람은 수술 내내 내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남편 역시 내 머리맡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수술실 안에 들어와서 함께 할 수 있었고, 간호사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고맙게도 사진을 잔뜩 찍어주었다.
제왕 절개는 마취약 덕분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지만 내 장기 이곳저곳을 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꽤나 오싹했다.
수술대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아이가 끄집어져 나왔다. 수술실에 있던 의료진들이 다들 아이가 엄청 크고 머리숱이 많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 머리맡의 의료진이 네 아이가 태어난 시각이 10시 31분이니 꼭 기억하라고 읊어주고는 깨끗하게 닦은 아이를 내 품에 놓아주었다.
나는 아이와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이 굉장히 감동적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굉장히 낯설었다. 늘 상상만 하던 아이와 갑자기 눈이 마주치니 당황스럽고 어색하여 오.. 와... 만 반복했더니 옆의 의료진이 네 아이인데 별로 안 기뻐하는 것 같다며 더치식 고오급 유우머를 시전하였다. 아이는 눈과 머리 색이 아주 어둡고 눈이 작아 완전히 동양인 느낌이 났다. 머리카락이 피와 양수로 떡져있었으므로 실제 색깔보다도 어두워 보여 내심 독특한 눈과 머리색을 기대하던 나로서는 약간 실망을 했다. 남편이 금발에 파란 눈이라 아이도 좀 밝은 색이 나올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남편에게 맡겨져 분만실로 갔고, 나 혼자 수술실에 남아 배를 꿰맸다.
배를 열고 아기를 꺼내는 것은 매우 빨랐는데 (체감상 약 10-15분 걸린 듯) 배를 다시 꿰매는 것은 거의 한 시간쯤 걸린 것 같다. 게다가 마취 약이 너무 강했는지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춥고 졸렸다. 간호사가 졸리면 배를 꿰매는 중에 자도 된다고 했지만 눈을 감으면 내가 당시에 많이 하던 핸드폰 게임 화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서 잘 수 없었고, 양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아플 정도였지만 내 의지대로 팔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분만실로 돌아가도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바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수술 마지막 15분가량은 춥다... 졸리다...라는 말만 정말 백번은 반복한 것 같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 중 한 명이 내게 아이스크림을 먹겠냐고 또 물어봤다.
수술 내내 춥다고 덜덜 떤 산모한테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그리고 방금 배때지 가른 사람한테 아이스크림을 권하는 게 맞는 거니...? 나중에 내 출산 스토리를 들은 가족과 지인들이 다들 웃겨서 숨 넘어간 부분이다.
드디어 봉합을 마치고 분만실로 돌아오니 남편이 웃옷을 벗고 아이를 안아 캥거루 케어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남편은 눈에서 꿀을 뚝뚝 떨어뜨리며 아기가 너무 귀엽다며 이렇게 귀여울 줄 몰랐다고 했다. 사실 임신 기간 동안 남편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 미온적이었기에 남편이 바로 아기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으나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아기가 내 배에서 끄집어져 나오는 순간에는 아기가 너무 퉁퉁 부어있고 피에 뒤덮여서 조금 징그러웠지만 피를 닦이고 내게 아이를 안겨줄 때부터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아이가 예뻤단다. 나는 아직 마취약에 잔뜩 취해있었던지라 눈을 거의 감은 상태로 담요를 더 갖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약 10여분쯤 지나자 마취가 조금씩 풀려 졸음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편에게 아이를 달라고 해서 제대로 다시 아기 얼굴을 보고 젖을 물렸다.
다른 사람들의 출산 후기 글에서 읽었었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본능적으로 젖을 세게 빠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마음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