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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May 10. 2024

‘갈등’을 진짜 잘 하는 사람 되기

'자기연민 워크북' (Neff & Germer, 2018)의 저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 방어 능력을 자기 연민의 한 가지 요소로 꼽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일단 온화하고 수동적인 느낌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때로는 이를 악물고 자기를 지켜내는 것 또한 자기 연민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인지, 사람들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당히 참고 맞춰가는 법을 배웁니다. 상대에게 불만이 있어도 대신 제3자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담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건 보기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난 이상, 어떤 관계든 의견차는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런 차이를 서로 알아가고 조율하는 과정이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해 나가는데 필수고요. 그런데 어느 일방이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맞춰주기만 하면, 자기 욕구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데에서 불만이 점점 쌓이기도 하고, 나아가 상대가 진정한 나를 알아갈 기회도 앗아가 버립니다. 결국 둘의 관계는 겉보기에 평온하지만 사실은 거리감 있는 관계로 점차 변질 되어갑니다.


커플 상담사인 에스더 페렐은 그녀의 저서 'Mating in Captivity' (Perel, 2017)에서 커플에게는 독립된 자아를 지켜내려는 본능과 배우자와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상반된 욕구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독립된 자아만을 강조하는 커플은 안정성과 신뢰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안정된 관계를 추구하는 커플일수록 각자의 개성은 점차 퇴색되어갈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한 끌림이 줄어든다고 하네요. 모순된 욕구를 가진 우리는 관계 속에서 어디까지 나를 지켜야 할지, 혹은 어디까지 관계를 위해 나의 일부를 희생해야 할지, 매일 매일 선택에 직면합니다.


흥미롭게도, 페렐은 독립된 자아를 강조하는 커플일수록 서로 간에 텐션으로 인한 생동감이 넘친다고 합니다. 이런 커플은 갈등은 많지만, 그만큼 각자가 자신을 지켜내는데 열심이기 때문인지 상대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도 합니다. 페렐은 관계 속에서 갈등을 꼭 나쁘게만 보고 피하려는 사회 분위기를 안타까워 합니다. 실제로 커플 상담을 하다 보면, 서로 티격태격하는 커플을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상담을 들어와서는, '우리 부부는 평소 절대 싸우는 일 없어요'라면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부부를 보면 걱정부터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변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상당한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잘못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이 지기라도 하면 진 쪽은 수치스럽기도 할 것이고, 상대방의 비난이나 보복에도 노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아가 걸린 일이라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전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내 욕구가 걸린 일이라면 나는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고, 그로 인해 나 자신과의 신뢰가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애매하게 거리를 두거나 일방적으로 맞춰줬을 때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고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갈등도 많이 해본 사람이 능숙하게 잘하기 때문입니다. 갈등하는 능력도 일종의 마음 근육 같아서, 자꾸 하다 보면 그 근육이 점점 튼튼해집니다. 10여 년을 참다가 작은 일로 폭발해 이혼까지 가는 사람이 있고, 작은 일부터 시작해 티격태격 해가며 크게 폭발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가능한 후자가 되자는 겁니다.


갈등을 하는 능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요소 중 하나가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입니다.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된 사람은 주양육자로부터 버려질 위험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훨씬 더 당차게 자기 의사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애착이 불안정한 사람은,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주양육자가 사랑을 도로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갈등의 조짐만 보이면 마음이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차갑게 닫아 버리거나 (회피 애착형), 상대에게 과하게 잘해주며 무조건 맞춰주려고만 합니다 (불안 애착형). 갈등은 위험한 것, 일단 피하고 볼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거죠.


안정 애착형이든 불안정 애착형이든, 일단 갈등에 진심인 자세로 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가능한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려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는 중입니다. 지금 당장 누군가와 10년 묵은 그 일을 들추어 목청 높여 싸우자는 얘기는 아니구요. 일상 속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우선 갈등은 위험하다고 알리는 저의 뇌 속 화재 경보기 (편도체)를 해제하는 연습부터 합니다. 지금 갈등을 조금 일으킨다고 해서 하늘이 두쪽 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안심 시킵니다. 너와는 조금 다른 나의 의견을 내면서 이 또한 나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나의 진심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상대와 조금 의견이 다를 때, 혹은 누군가를 거절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정중하게 사유를 설명하고는 짧고 직설적으로 이유를 알립니다. 조금 무섭고 불편하더라도, 마음을 달래가며 일단 그렇게 하다 보니, 생각보다 반응도 좋고 갈수록 안심이 됩니다. 상대에게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신감에 스스로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주변과 조금씩 실험을 해보니, 신기하게도, 의견 차를 표현할 때 내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상대가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상황에서는, 같은 말에도 상대가 방어 자세부터 취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내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와의 신경계 교감이 끊어져 무표정한 얼굴도 화난 것처럼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Psychalive, 2018). 그래서 연결감이 유지된 상태에서 이야기와 신경계가 교란되어 (dysregulated) 연결감이 끊어진 상태에서 듣는 이야기가 아주 다르게 와 닿나 봅니다. 갈등을 자주 해본 사람일수록,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신경계가 안정된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선 작은 것에서부터, 리스크가 적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식당에서 주문을 잘못 받았을 때, 흥분하지 않고 정중하게 원하는 것을 한번만 더 전달합니다. 갈등을 회피할 수 있는 옵션이 뻔히 보이는 데도, 일단 다시 돌아가 또박또박 나의 의견을 전달해보려 합니다. 아직 서툴러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은 커져 갑니다. 그리고 밤에 잠도 잘 오고요.


매일 의식적으로, 진심으로 갈등을 일으키며 살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정중하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훨씬 생동감 넘치고 깊이 있는 관계들을 기대하면서요.



연습 1. 친구나 동료와 최근에 서로 살짝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그 사람을 만나 그때 이야기를 잠깐 해도 되겠냐고 묻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누어 보기.


연습 2. 불만이 10점 만점에 1-3 정도일 때, 그래서 마음이 아직 교란 (dysregulated)되기 전일 때, 나의 불만을 차분하고 정중하게 전달하는 연습 해보기.


연습 3. 평소 쌓여 있던 불만이 커서 상대방과의 안정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편지 형식으로 써보고 편지를 찢어서 버리기. 그리고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보기.



참고.

Neff, K., & Germer, C. (2018). The mindful self-compassion workbook: A proven way to accept yourself, build inner strength, and thrive. Guilford Publications.


Perel, E. (2017). Mating in captivity: Unlocking erotic intelligence. Harper Collins.


Psychalive. (2018, April 23). Dr. Stephen Porges: What is polyvagal theory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ec3AUMDjt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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