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냥 자신감을 좀 가져!"라고 격려를 해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무슨 스위치 켜듯이 켜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 좀 바꾼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40대가 된 지금은 그때 그 말이 왜 그리도 와 닿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보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신감은 절대 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생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을 가져 보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옆에서 아무리 누가 칭찬하고 격려해줘도, 내가 뼛속에서부터 느끼지 못하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신감이 아닙니다.
진짜 자신감은 내가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에 도전하여, 그 일을 해냈을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기분이더라구요. 내가 어려운 일에 도전하여, 혹은 내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냈을 때 형성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진짜 자신감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키우려면 자꾸만 리스크를 안고 도전을 해야만 하는데, 안 좋은 경험을 반복해서 해온 사람은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동물들도 자꾸만 실패를 겪고 나면 면역이나 신경계 발달, 스트레스 호르몬이나 도파민의 작용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Fletcher & Birk, 2020). 그래서 자꾸만 도전을 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성공 경험이 안 쌓이고, 점점 자신감은 더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20대 때는 그렇게 막막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그런 상황을 피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고, 간혹 용기를 내보면 상황이 어색해져 또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 내게 조언을 해준다면, 칭찬이나 격려보다는, 오히려 약점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것 같습니다.
영화 8마일에서 인생이 바닥을 친 래퍼 래빗이 랩 배틀을 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자기 약점을 전부 쏟아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할말을 잃게 하여, 배틀에서 결국 승리를 합니다. 내가 지금 가진 게 없고, 내 삶은 이미 바닥을 친줄 알았는데도 자꾸만 더 낮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면, 억지 긍정보다는, 오히려 나의 약점을 온전히 인정하고 향유하는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어렸던 저에게 권유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바로, 지금의 나를 직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나의 약점을 전부 인정하고 쏟아내고 나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똑바로 설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도 하나의 도전이고 성공입니다. 내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사이클의 첫 단추를 이렇게 끼웁니다.
내가 가진 게 없고, 잘난 게 없고, 주변에서 알아주기는 커녕 오해하고 비난하기만 한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내 사지는 여전히 멀쩡한지, 내 정신은 그대론지 확인을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았다면, 크게 한번 웃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꼭 도전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고, 죽기 살기로 도전해봅니다.
저는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의외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도전해서 실패했더라도, 리스크를 안고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아는 충분히 나를 멋지게 봐주나 보더라구요. 다양한 약점을 가진 나지만, 이 정도면 나는 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서, 다음 도전을 자연스럽게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연습 1. 내가 스스로 '이정도는 해야 한다'고 정한 명제는 없는지 적어보기. 그리고 그 명제가 쓰여진 종이를 찢어버리기.
연습 2. 내가 지금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혼자 있는 장소에서 입 밖으로 100 번 반복해서 말하기. 그런 후 그 말의 힘이 조금 빠졌는지 스스로 점검해보기.
참고.
Fletcher, J. R., & Birk, R. H. (2020). From fighting animals to the biosocial mechanisms of the human mind: A comparison of Selten's social defeat and Mead's symbolic interaction. The Sociological Review, 68(6), 1273-1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