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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균탁commune May 02. 2023

우울증 환자로 살아가기

우울증 환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2)

 프로이트는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히스테리 환자'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조금의 우울증을 다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우울증을 견뎌내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울증이 유전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실제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우울증이 유전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계시다. 어머니의 우울증은 심각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우울증은 너무 심각해서 뇌병변증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어머니 옆에서 3개월 간 간호를 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처음에 일반 병동에 입원했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인한 뇌병변이 심해져 정신병동에 입원하라는 소견을 받았었다. 왜냐하면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고, 이상한 말을 되풀이 했기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는 그것이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일단 어머니가 정신병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 간호는 내가 전담하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어머니는 3주 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부어오른 뇌가 가라앉자 어머니는 정상의 어머니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우울증이 완벽히 치료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우울증 약을 달고 살았다. 

 아버지가 귀천하시고 어머니의 우울증과 나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아니 어머니보다 내 우울증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립다. 그래서 하루에 11알의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울증 약을 나보다 적게 복용하고 있다. 10개월 간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일까? 함께 못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많다. 내가 시인이 되어 시집을 내는 것, 그리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현재 나는 시인이 되어 있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내 시가 나온다. 시집은 올해에 출판할 계획으로 원고 마무리 작업 중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우울해진다. 조금만 더 빨리 시집을 계약했다면 아버지는 내 시집을 한 권 받아보고 귀천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다 내 게으름 때문이다. 알코올 의존증만 없었어도 나는 아마 시집을 더 빨리 출간했을지도 모른다. 벌써 2집을 낼 출판사까지 섭외했으니, 두 권의 시집을 보고 귀천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나는 시인이 되는 것을 가지고 참 많이도 싸웠다. 사실 시인은 돈을 벌지 못하는 직업이다. 아버지는 내가 가난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난 가난하더라도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냥 막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진정한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시인은 가난한 것이라고 싫어하셨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가난하게 사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초등학교 졸업 앨법의 가격을 나는 알고 있다. 아버지의 초등학교 졸업 앨범의 가격은 콩 한 말이다. 집에 돈이 없어 아버지는 자신이 소작하고 받은 콩 한 말을 이고가 졸업장과 바꾸었다. 그토록 지겨운 가난 그것을 대물림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했다. 내가 안 해본 직업들이 더 많겠지만, 참 많은 직업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직업에서 성공하기를 바랬지만, 언제나 성공의 문턱까지만 갔다. 성공은 못했다. 그러한 일들이 나의 우울증을 더 키웠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좌절과 싸웠다. 시인이 되고 싶어 틈만 나면 시집을 읽고, 시를 썼지만, 신춘문예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12월 말에서 1월 말까지는 폭음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나는 신춘문예 출신이 아니다. 그저 모 잡지의 신인상 출신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싸우며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우울증은 더욱 악화되었던 것 같다. 시인이라는 직업으로는 결혼이라는 것도 엄두도 낼 수 없다고 집 안의 장남이 무엇나는 짓이냐며 나는 집 안의 압박으로 우울증을 더 심하시키기도 했다.

 결국 알고 보면 우울증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내 마음가짐이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회의 반항적인 성격이 되었고, 어느 사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었다. 그렇게 우울증은 세월이 지날 수록 심해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병원을 찾아 우울증 약을 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랬다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지금도 문득문득 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하는 나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낙인이다. '우울증 환자 = 정신 병자'라는 공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만연하다. 하지만 우울증은 정신병과는 다르다. 정신분열이나 정신착란과는 다르다. 우울증 환자도 나처럼 활발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나는 행사를 진행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우울증은 내 속에 있는 것이어서 나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우울증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냥 우울증 환자로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우울증은 나 자신에게는 피해를 줄지 모른다. 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으니까. 나는 왜 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우울감을 막기 위해 항우울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환자인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을 사람들은 마치 내 탓인 것처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우울증에 걸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이다. 나는 기피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그냥 내 안에 우울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누구보다 사회생활을 잘 할 자신이 있다. 그건 내 명함에 적힌 직함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모 법인의 이사장이고, 모 장학회를 이끌고 있는 이사장이다. 그리고 총동창회의 사무국장이다. 문학회 2곳의 사무국장이고, 지역문학회의 사무차장이고, 동인 문학지 여러 곳의 동인이다. 나는 사회 생활을 전혀 못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이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이여 당당하게 자신이 우울증 환자임을 밝히자. 우울증 환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를 곁에 둔 사람들이여! 우울증 환자는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는 친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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