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성격, 이념, 사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당의 정체성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꾀할 때 정당의 색을 바꾸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란색이었던 한 정당이 빨간색으로 변신하여 나름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고, 또 다른 정당은 노란색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색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사상적으로도 색은 강한 의미를 갖는다. 좌파는 빨간색, 우파는 파란색으로 표현되는데, 색채학적으로 이 두 색은 보색 관계에 있다. 이를 반반씩 섞으면 회색이 되는데,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회색분자’라 부르는 것도 이러한 색의 상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색은 또한 지역과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 오륜기의 다섯 개의 고리는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상징한다. 결국 모든 색은 각자의 개성과 의미를 지니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색의 본능적 활용은 정치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닌자거북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4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도나텔로의 이름을 차용한 네 마리의 돌연변이 거북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흥미로운 점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색을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다. 리더인 레오나르도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파란색을 사용하고, 다혈질인 라파엘은 강렬한 빨강으로 표현된다. 미켈란젤로는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반영한 주황색(혹은 노란색)을 띠고 있으며, 두뇌가 명석한 도나텔로는 신비로운 보라색을 두르고 있다.
특히 파란색을 띠는 리더 레오나르도는 머리를 써서 위기를 극복하는 전략가적 면모를 보인다. 이는 SF 영화 ‘스타트렉’에서도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캐릭터들이 과학과 의학을 담당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파란색은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색으로, 냉철한 판단과 논리를 상징한다. 물론, 이러한 이성 중심의 성향이 때로는 ‘햄릿’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닌자거북이의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판단력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준다.
색채는 이처럼 정치, 문화, 캐릭터 설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우리는 색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체성을 표현하며, 때로는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색이 조화를 이루어야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조금 다른 색을 띤다고 해서 배척하기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