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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마디호박이 떠나고 배추가 온다.

by 칠렐레팔렐레

올해 뒷마당 한켠을 가득 차지했던 마디호박은, 정작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나름 무농약을 주장한 나의 무지 덕에 힘을 잃었다.

낮의 열기 속에 잎은 늘어지고, 뿌리 근처의 굵은 줄기는 벌레의 입질과 함께 서서히 썩어갔다.

어쩌면 올해 마디호박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건강한 내일을 준비하는 일뿐.


빈 땅을 바라보며 나는 새로운 작물을 떠올렸다.

가을이 오는 길목, 무와 나란히 설 친구.

결국 선택은 배추였다.

수확 시기를 맞추면, 배추는 무와 함께 김장거리로서 완벽한 조합이 될 터였다.


8월 초, 씨앗은 1~2cm 깊이로 품을 틀 것이고, 줄 간격은 30cm, 씨앗 간격은 5cm.

싹이 트고, 솎아주고, 다시 간격을 넓혀주면서 단단한 뿌리를 내려갈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흙을 적시고, 부직포를 덮어 해충을 막으며, 두어 달 뒤에는 속이 꽉 찬 묵직한 김장배추를 들고 웃을 나를 그려본다.


이제 여름의 녹색 덩굴은 자취를 감추고, 가을의 김장채소가 그 자리를 채운다.

정원은 늘 이렇게, 한 생이 끝나면 또 다른 생을 맞이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 순환의 기쁨 속에 나도 조금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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