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의 끝자락, 체리나무 그늘 아래서
뒷마당 체리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모처럼 에어컨 바람 대신 자연의 숨결에 몸을 맡긴 오후.
라디오에서는 Easy Rock 채널이 잔잔하게 흐르고,
그 음악 사이로 오래된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너희들이다.
강의실에서 나를 바라보던 눈빛,
끝나가는 수업 시간의 정적,
질문과 망설임, 때로는 웃음으로 이어지던 그 순간들.
내가 가르쳤던 것보다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았던 날들.
이제 나는 은퇴라는 이름의 조용한 계절 속에 있다.
책을 내려놓고, 시계를 벗어두고,
시간을 쫓는 대신, 시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여전히
너희와 함께했던 기억들에서 출발한다.
오늘은 체리 열매를 땄다.
하나하나 손끝으로 따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결국 누군가에게 남겨질 무언가를
조용히 익혀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너희에게 전했던 말들,
강의실에서 나누었던 사소한 문장 하나,
그것이 어디선가 작게라도 열매처럼 익어가고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
바람은 여전히 살짝 더웠지만
그 안에 묻힌 가을의 냄새가
이 여름의 끝자락을 알려준다.
나는 눈을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너희 이름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부른다.
그리운 제자들아.
지금 너희가 있는 그곳에도
이런 햇살과 바람이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쩌다 문득,
나라는 사람이 너희의 기억 어딘가에서
작은 미소로 떠오르기를 바란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2025년 여름의 끝자락,
체리나무 그늘 아래서
-Crocus
“그늘 아래 흐르는 이 시간이,
여름이 들려주는 가장 잔잔한 시(詩)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