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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May 12. 2023

[에세이] 익숙한 것들

일주일에 10번은 지나다니는 이 길의 횡단보도 너머 보이는 신호등과 그 풍경이 오늘은 왠지 아름다워 보였다. 신호등을 보고 건너는 것도, 오후에서 저녁 어스름이 되어가는 햇살에 비친 나무를 보는 것도 익숙하지만 오늘은 예쁜 모습이었고, 황급히 카메라를 열어 휴대폰에 담았다. 횡단보도 시간이 끝나가기 전 성급히 휴대폰을 열어 찍기. 지나가는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 같다. '저기 뭐가 있지도 않는데 뭘 찍는거지' 하고. 사거리에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속의 누군가도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이 예뻐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우리는 우주의 시간이라는 개념에 갇혀 엄격히는 같은 장소라도 절대 동일한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장치 속에서 자주 지나다니는 공간은 목적지를 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쩔 때는, 바닥의 작은 민들레가, 들꽃이 눈에 들어올 때도 있고, 오늘의 나처럼 작은 신호등조차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종종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의 새끼손가락으로 온 정신이 집중되는 때가 있다. 스타벅스의 차가운 음료를 위한 반투명한 컵을 집어 들 때의 내 새끼손가락에 정신이 팔리면, 이 손가락 친구는 관심을 받아 쭈뼛쭈뼛하는 'I' 성향의 친구처럼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나의 의식이 무의식을 여기저기 침범하기 시작한다. 내가 숨을 쉬는 것도, 걷는 것도, 무언가를 보는 것도 무의식적인 모든 것에 의식이 침투하면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무의식에 의식이 침범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자체까지도 '의식'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게 된다. 그 때부터는 갑자기 이렇게 사는 게 힘든 거구나 하는 우울과 자조로 가기도 하고, 평소 자주 먹던 커피 맛도 갑자기 음미하면서 즐기는 행복한 상황으로 도입하기도 한다. 어쨌든 살아있음을 느끼는 좋은 방법임은 확실하다.


'하늘을 보며 산 때가 언제였는가.' 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거나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모르게 예쁜 신호등을 길에서 찾아냈다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오늘 글을 쓰는 5월 중순에서, 곧 여름이 올 것이다. 더운 여름이 오면, 오늘과 같은 풍경의 장소 또한 찜통같은 더위로 짜증나고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로 지나쳐가게 될 것이다. 비 오는 날에는 큰 우산을 걸치느라 신호등 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반복이지만, 우리는 절대 정확히 같은 공간과 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는 없다. 지구 밖에서 보면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이미 공전과 자전을 통해 걸어서 몇만년을 가야하는 변화를 맞이한 공간이다. 우리의 뇌는 엄청나게 정교하게 코딩되어 있어,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색상, 구체화된 시간과 계절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서 뇌를 과부화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지나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우울' 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밤에도, 잠에 잘 들지 못해 새벽 4시를 바라보고 자는 밤에도 그 전과 비슷한 순간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순간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덜하는 것 같다.


같은 우울은 없을 것이고, 같은 슬픔도, 같은 불면증도 없을 것이다. 내일 겪게 될 감정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질감의 차이 속에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뇌가 "나는 왜 맨날 이런 기분이지"라고 같다는 착각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뇌의 이기심에 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뇌의 주인이다. 우리 정말 질 필요가 없다. 같은 순간이 없다는 마음으로, 가족과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사랑도 변하고, 미움도 변하고, 감정도 매일 새로운 감정으로 채워질 것이다. 사람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어제보다 주름이 더 많을 수도 있고, 체중이 0.1키로 줄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관계는 소중하고 중요하다. 나의 불면증을 매일매일 새로운 것이겠지만, 나와 나의 불면증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나의 상태에 따라서 불면증은 나를 종종 방문하고 나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모르는 관계도 관계일까. 그렇다면 모든 것은 관계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은 불면증과 모르는 관계를 하고 싶다. 언젠간 다시 찾아올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불면증이 찾을 수 없는 외딴 지구 반대편 나라에 날아가서 살고 싶다. 나와 내 눈앞의 신호등의 관계는 아는 관계이다. 신호등과 나무에 비친 예쁜 햇빛과 나는, 내가 그것을 보고 좋아하는 순간에 이미 내 시신경을 통과하는, 접촉하는 관계를 가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빚지고 있다.


익숙하던 풍경이 오늘은 유난히 예뻤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오다가 글로 적히는 새로운 순간이 나에게 생겼다. 나는 끊임없이 영향받는다. 세상은 나를 무엇이든 어디서든 무언가를 선택하게 한다. 이러한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누군가가 일상 속 풍경이 갑자기 예쁘거나 일상적이던 순간이 갑자기 특이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어떠한 날에 그 마음을 기억했다가, 이 글을 읽는 순간 잠깐 관계된다면 그것을 가장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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