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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May 19. 2023

개소리

왈왈

'잠긴 배는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다.'


이미 내가 잠겨버리기를 선택했고 내가 그저 가라앉아져 버리기를 선택했기에 그 누구도 나를 가라앉지 않게 붙들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부서지지도 않았고, 나는 다시 뜰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도 아니다. 나는 부력을 통해 둥둥 뜰 수도 있다. 나는 키가 있어서 방향도 조절할 수 있고 모터도 있다. 원하는 곳으로 점점 나아갈 수도 있는 쓸모 있는 배다. 물에 잠겨버려도 원래 물에서 쓰는 모터를 달고 있는데, 다시 띄워주기만 하면 나는 다시 배가 될 수 있다. 


아 점점 깊어진다

아 점점 깊어진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내 손도, 내 발도, 내 부속품 중 어디에도 내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둥둥 뜨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들은 없다. 우리는 꽁꽁 묶였다. 내가 내 몸에 묶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할까? 내 눈도 내 귀도 내 심장도 내 발톱 손톱도 그리고 내 돛까지 그리고 내 갑판까지도 나에게 묶여서 나를 살려줄 수도 나를 기억나게 해 줄 수도 없다. 샴푸를 쓴 통, 세제를 다 쓴 통, 열어서 물로 젖히면 거품이 보글보글 난다. 거품이 보글보글 계속 나면 점점 짜증이 난다. 그건 재활용을 아직 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 물이 얼마나 귀한데. 물이 아깝다. 그렇게 샴푸통도 세제통도 자신의 존재감을 끝까지 녹녹히 남긴다. 플라스틱 통까지 재활용 할 수 없게 해 버린다.


내 몸에서 재활용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 나무 몸통은, 물 안에서는 썪어 없어질 것이다. 내 나무 몸통을 영양분 삼아서 말미잘이 터를 잡을 수도 있을까? 산호초들이 내 몸통을 집을 삼아서 번식할 수 있을까? 어쩌면 물 속 바다 속 내 존재는, 내가 썩는다는 것은 주변 생물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울어도, 내가 엉엉 눈물을 흘려도, 내가 소변을 본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물이 다 쓸어내려가 버린다.


내 존재는 뭘까. 

내 존재는 뭘까.


아. 그랬냐. 아 그랬느냐. 내 존재는 뭘까 나에게 물었다. 그건 답을 얻을 수 없는 병신 같은 질문이다. 나에게 나의 삶의 가치를 질문한다는 것은 정말 병신 같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가? 그런데 그런 질문은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 학교에서 선생님도 이런 시험문제를 내면 전교 1등에게도 2등에게도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하다가 지치고 스트레스 받고 쓰러질 것 같고, 머리 속이 어지러워지고 점점 예민해지고 화나고 짜증나고 그러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멍청하지 않는 것. 이딴 좋은 대답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런 질문으로 내 자신을 난도질한 셈이니까.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런 건 봐주도록 하자는 거다. 나에 대한 답을 내가 찾아나서는 거라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살다보면 내 삶의 가치가 찾아 진다는 것이다. 요리하는 것이? 노래하는 것이? 배가 되어서 둥둥 떠서 멀리 항해하는 것이? 그것이 너의 삶의 가치인가? 내가 그런 대답을 듣고 예민한 질문을 어쩌면 답할 수 없는 예민한 질문을 몇 번 하면 너는 분명 짜증을 낼 것이다. 그리고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머리를 꽁꽁 싸매 가며 다시 내 존재는 뭘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글을 끄적대는 것보다, 배 위에 상자 하나를 더 싣는 것이 의미 가 있다. 나는 가라앉는 배. 나는 가라앉는 배. 나중에 어떤 잠수함이 나를 찾는다면, 내 허벅지부터 더럽게 칠해진 구리 페인트를 보세요. 빨간색 구리 페인트를 보시면 나를 찾을 수 있답니다. 그래도 그 때도 그 잠수함은 의미를 모르겠지. 나를 찾으면 무슨 의미가 있지? 내 배에 비싼 귀금속이 있다. 그걸 구해서 팔면, 의미를 찾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비싼 돈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의미가 있나? 의미는 없지만 그건 유익하긴 한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배가 있다. 진짜 사람 배가 아니라, 동물의 배가 아니라 둥둥 떠다니는 나는 식욕이 가득한 떠내려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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