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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May 23. 2023

책 리뷰 : 구의 증명 - 최진영

너와 내가 계속 함께할 수 있는, 어딘지 모르는 그 곳으로

소설, 구의 증명을 읽었다.



도서 정보

작가 : 최진영          

출판사 : 은행나무          

페이지 : 180p          

개요 :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책 읽는데 걸린 시간 : 1주           



소설 구의 증명을 읽었다.


연인은 둘 중 먼저 죽는 자를 먼저 죽지 않은 자가 먹기로 한다. 그리고 먼저 죽지 않았던 자는 이 약속을 지킨다.

  

 이게 이 소설의 전부이다. 구의 증명은 이 한 줄의 글을 모티브로 발전한 소설이다. 누구든지 떠나간 옛 연인을 먹을 때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를 머리 속으로 곱씹는 것은 먹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본다라고 이야기 할 때, 종종 '곱씹다.' 라는 표현을 잘 사용한다. 씹어먹는다는 것이다. 기억하려는 것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연인을 넘어, 잊으려 해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이별의 대상을 머리 속이 기억해내는 것은 그것이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뇌에서 그러한 존재를, 특정한 순간을 강렬하게 기억하는 것은 더 잘 살고 싶고, 또는 생존에 유리하고 싶은 반사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그러니 곱씹게 되는 것든 더 열심히 씹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 곱씹으면 된다.


구를 다 씹어먹은 그처럼, 순서대로 다 씹어먹은 그처럼 우리도 다 곱씹으면 나의 안에 진정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그 대상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땅을 떠나버린 존재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의 민망한 '이불킥'할 순간 정도로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것들도 다 곱씹어먹으면 된다. 구의 살점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다 구를 먹은 그의 에너지가 되고 영양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모든 순간들을 다 먹으면 된다. 그러면 그것들도 나의 에너지가 되고 나의 힘이 될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극악무도한 살인자인 안톤 시거는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운명을 비유한다. 이 소설 속에서 구를 끈질기게 쫒던 자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삶'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은 것은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 나의 소중한 존재가, 나의 소중한 순간들이 언제까지 나와 함께할 지 모른다. 우리에게도 운명의 감정이 있다. 운명을 믿지 않더라도 운명 같은 느낌은 있다. 운명 같은 연인, 운명 같은 관계, 이미 운명이 되어 태어난 가족까지. 운명 같은 감정은 우리에게 끝까지 잡으라는 힘을 주지만 세상을 결국 빼앗아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 곱씹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한줄평]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앗아가는 삶의 순간까지는 내가 사랑하는 것과 원없이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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