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턱낸 날

by 유현우

화끈함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홧김에 긁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기대를 저버려야 나라도 화끈했다며 두 엄지를 치켜세울지.

그는 배고플 때 장을 보러 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릇 빼고 모조리 다 주워 담았고, 허기를 채웠다. 그릇을 사러 갔던 날이면 모양새와 출처만 밝혀 내는데 눈을 부릅 떴을 뿐, 더 큰 것은 없냐며 종업원에게 묻지도 않았다. 이쁘잖아. 한국 도자기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어제 방어 집에서 기름지고 진한 분홍빛을 너도 보았겠다. 나올 때 덜 익은 복숭아의 연분홍빛 홍조를 그에게서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그 빛이 술기운으로 차오른 것이었는지, 본인도 부끄러웠기에 비추어낸 것인지를 출입문 앞 거울을 보며 고민하는 나를 너는 못 보았겠다.

차라리 이빨에 고춧가루 낀 채로 여자와 카페에서 데이트했던 것이 덜 부끄러웠을 나를 너는 몰랐겠다. 맞다. 나는 차라리 방구석 탁상 거울을 바라보며 발견한 고춧가루를 황망히 혓바닥으로 가리는 게 덜 부끄러웠겠다. 생색을 내며 우리에게 방어를 먹인 그에게 고맙다고 할지는 못할망정 나는 너에게 너도 느꼈고 보았고 알아챘냐며 울타리를 칠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왜 너는 내가 화끈했으면 해?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데도 말이야. 적당한 크기의 그릇이 무엇인지, 커야 한다면 어느 정도 커야 크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대뜸 손바닥 크기를 재보자며 오른 손바닥을 맞대기 시작했다. 그러곤 그릇 하나를 가져오더니 내 손에서는 이렇게나 큰데, 너의 손에서는 종지까진 아니지만 그만큼 작아 보이네.

그는 우리가 공격할 줄 알고선 방어를 홧김에 긁은 것을 너는 몰랐으면 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넓은 등판에서 아우라가 아지랑이 피어나듯 화끈거림을 나는 보았다. 잘 어울렸다. 나는 머쓱하게 관자놀이나 긁어댔다. 너는 내게 살며시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그날 그에게서 연분홍빛 홍조를 분명히 보았다고. 나는 황망히 이마에 손차양을 만들곤 냅다 도망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