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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prison Feb 07. 2023

무를 주세요~

2월  5일 보름날의 일기


무사태평!
  무사태평!  
무사태평!



5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 정월대보름. 

요즘 사람들은 대보름을 명절이라고 생각도 않지만 우리집에선 몇 해 전까지도 아침에 차례를 지냈다.

그리고 명절이 반가운 어릴 적은 말할 것도 없고, 명절증후군이 도지는 나이가 돼서도 나는 대보름만은 좋았다. 여러 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과 반찬에다 재미난 풍속이 많아서다.

보름 명절은 전날밤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날 저녁엔 오곡밥을 먹는다. 다섯 가지 잡곡을 넣어 찐 밥은 씹을수록 구수하다.

그리고 부럼을 탕탕 깨며 악운을 내쫓는다. 값비싼 호두도 이날만큼은 원없이 먹을 수 있다. 

어릴 땐 이날 밤을 꼴딱 새야 했다. 잠이 들었다간 눈썹이 하얗게 세기 때문인데, 잠 많은 나는 결국 곯아떨어졌다가 아침에 치약 범벅이 된 눈썹을 발견한 적이 있다.  

시골에서는 쥐불놀이를 한다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해보지 못했다. 


보름날 아침엔 할 일이 더 많다. 

일단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절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날 밤에 준비해둔 무 조각을 배어 먹는다.

무사태평, 무사태평, 무사태평을 속으로 외면서 세 번 정성껏 배어 문다. 평온한 한 해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그다음엔 더위를 판다. 갑자기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얼른 "내 더위 가져가라!"고 외친다. 

식구가 많을 땐 골라 팔 수 있었는데 요즘은 팔 사람이 하나라 영 재미가 없다. 그래도 팔긴 팔았다. 

"여보, 내 더위 가져가~" 

이제 맛있는 밥을 먹을 차례.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노적쌈'이다. 

간밤에 준비해둔 찰밥을 아침 일찍부터 쪘다. 팥, 콩, 밤, 대추를 넣고. 

김이 나는 찰밥을 기름 바른 김에 커다랗게 싼다. 주먹만 한 노적쌈이 완성되면 노적가리처럼 접시 위에 수북하게 쌓는다. 

그리고 갖은 나물 반찬과 동치미로 아침상을 차린다. 올해는 곤드레와 우거지, 무와 시금치 나물을 준비했다. 예전에 엄마는 보름날 아홉 가지 나물찬을 차렸다. 두부조림과 북어찜도 했는데 두부를 먹으면 일년 내내 살이 찌고 북어를 먹으면 마른다고 해서 형제들끼리 서로 싫은 걸 먹이려고 기를 썼다.

보름날은 아홉 번 먹는 날이라는데 올해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약해진 위장으로는 아홉 번은커녕 두 끼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푸짐한 노적쌈과 나물로 상을 차리니 뿌듯하다. 

소식하는 옆지기가 커다란 노적쌈을 두 개나 해치운 것도 아주 보람차다. 

밤에는 구름 사이로 슬금 나온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부디 모두 무사태평하게 해달라고,

내가 소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고.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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