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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prison Mar 07. 2023

백 년 전 청나라 지식인에게 놀라다

3월  7일  독서일기

1만 년이 넘는 인류역사를 돌이켜 헤아려 보면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이 수없이 많다. 부녀자는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같은 두뇌를 가졌으며 또한 누구나 가장 친하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데도,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이치에 맞지 않게 억압하고 어리석게 만들며 가둬두며 묶어두어 스스로 독립할 수 없게 한다. (...) 
인인(어진 사람), 의사(의로운 사람)을 칭하는 사람들도 이런 일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고 여성의 불행을 대변하거나 개선하려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불공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캉유웨이



조너선 스펜스는 현대 중국을 만든 인물들을 그린 <천안문>에서 캉유웨이를 주요하게 다룬다. 캉유웨이 하면 청왕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개혁을 주장한 보수적인 유학자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여기 소개된 그의 '대동사회론'에 깜짝 놀라다. 

이 세계는 "슬픔과 고통의 세계"이며, 거기 사는 "주인들은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그는, 인간은 고통을 나눔으로써 우주와 일체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말한 대동사회가 인간을 슬프게 하는 가족.성. 계급.국가. 직분. 법률 같은 벽을 허문 이상임을 알고나니 그 깊고 너른 철학에 감탄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가 가족과 성의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살았던 유학자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사적 소유의 기반인 가족제도의 폐지, 공공돌봄과 성차별 철폐를 주장했다니! 변발한 그의 모습만 보고 편견을 가졌던 내 자신이 한심하다.

한심한 것은 당대 조선의 남성 지식인도 매한가지. 당시 그의 사상을 접했을 텐데도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이는 내 기억에 없다. 하기야 21세기인 지금도 동성애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판이니까...

백여 년 전 청나라의 유학자보다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오늘, 그래도 앞선 이의 곧은 걸음을 만나는 기쁨에 웃는다. 웃자, 웃자,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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