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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 Jan 29. 2023

간호 본과에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팬데믹

드디어 나도 간호대생?

드디어 험난한 간호 예과를 마치고, 간호 본과에 들어왔다. 이때만 해도 본과생이 된 것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미국 전역을 덮쳤고, 우리 학교도 여지없이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모든 수업을 돌렸다. 당연히 아이 학교도 온라인이었고, 남편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였다. 이웃과 왕래조차 하지 못했고, 미국은 마스크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그로서리에 장 보러 가는 일조차 무서웠다. 식구들이 집에 있으니, 밥과 간식 그리고 집청소. 내 학교 공부와 아이의 공부까지. 이중 삼중고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풀타임으로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랩이 있는 과목은 학교에 나가야 한다니 아직 어린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학교에는 직접적으로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는 학생들도 있었기에 더 몸이 사려졌었다. 결국 과에 메일을 보내 팬데믹 한시적 파트타임 학생이 되기로 했다. 랩이나 병원실습 과목은 제외하고 렉쳐위주의 과목은 일단 듣고, 다음학기는 교양필수로 채워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흔히 말하는 물론 교양필수 과목은 듣지만 정작 간호학과 과목은 쉬어가는 그런 바쁜 갭이어를 갖게 된 것이다.

온라인 수업은 참 힘들었다. 이 기간동안 영어 과목을 두 개를 들었는데, 둘 다 과제양이 죽고 싶을만큼 많았다. 영어가 참 약한 나에겐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할 만큼 온라인 수업들은 과제가 더 많았고, 로드도 매우 빡빡했다. 당연히 아이의 학교과제도 엄청났다. 백신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나의 첫 2학년은 외롭고, 힘들고, 바쁘고, 우울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의 나의 경험과는 달리, 아이는 이 시기를 매우 행복하게 기억한다. 가족이 집에서 수업 들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던 소중한 추억으로 말이다. 분명 같은 경험인데, 왜 내 시기는 회색빛이고 아이는 무지개색인지 참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이의 이런 기억이 감사하다. 나처럼 암울하기만 했다면 더 미안했을텐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서, 그리고 바쁜 엄마 아빠를 둔 덕에 알아서 영어를 쓰고 책을 읽고 뒤쳐지지 않아서 참 고마웠다.

*팬데믹 동안 온라인 수업을 늘 같이 듣던 고양이,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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