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이어진 관계
'향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향수는 뛰어난 후각을 가진 주인공 파트리크가 완벽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도 희생시키며 도덕적 경계를 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가 만든 향수에 매료된 사람들의 광기에 의해 파트리크는 결국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향기는 사람을 매료시킨다는 것을 책으로 읽고 그게 가능할까 의문을 가졌는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도 향수를 사용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존재와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운 관리와 적당한 꾸밈이 있어야겠지만 난 그것을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도 향수에 매료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몇 년 전 새로운 학교로 부임하고 1학년 아이들을 맡았을 때이다. 23명 중에서 한 아이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불편함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울거나 겉으로 그 상황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도 신경이 쓰이고 아이들도 상대하기에 벅차하였다.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왜 밥을 안 먹는지도 탐구해야 했고 또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야 했다. 그 엄마는 매일 아들을 데리러 하교시간에 나와 계셨다. 그러면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밥을 안 먹고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
"신경질적으로 친구를 대했어요.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오늘은 울지 않았어요...." 등등
"30년 교직생활동안 처음 만난 특별한 아이인데 저도 대하기가 버거워요. 함께 소통하고 공부하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 봐요."
다른 아이들은 비교적 잘 적응을 하여서 학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별로 없었지만 그 친구는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데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엄마도 이미 아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라는 걸.
엄마는 나와 소통하며 나를 점점 신뢰롭게 생각하였다. 모든 학기가 끝나고 헤어지는 시간이 왔을 떼 좀 만나자고 했다. 이제 공식적인 학부모간은 끝나서 그 아이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고 싶기도 해서 만났다.
찻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데 마주 앉은 그녀에게서 향수가 풍겨져 나왔다. 그때 향수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 향수는 뭔가 나를 끄는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만나는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가져다주는 향기였다.
아이는 엄마를 닮는다. 엄마에게서 본 독특한 품성이 아이에게도 있었다. 아주 유니크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1년 동안 그 아이는 퇴근 후에도 집에까지 따라왔었다. 끙끙 앓고 케어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 노고가 보람으로 다가올 정도로 향수는 나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분이 뿌리고 온 향수 이름은 "퓨어 머스크"!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뜩이나 향수도 화장품도 따로 쓰지 않던 내가 그 향을 맡으면서 취해버릴 정도였으니까.
그 향수 덕에 우리는 좀 더 호감을 갖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머스크 향이 계속 맡고 싶었다.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의 머스크 향수를 최초로 구입하게 되었다.
1년 동안 마음 졸이고 힘들었던 시간을 퓨어 머스크 향으로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향을 맡을 때마다 그 향을 알려준 그 학부모가, 그리고 관계에 대해 더 공부하게 해 준 사랑스러운 제자가 생각난다.
나도 향수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퓨어 머스크 향은 나를 나답게 해주는 한 가지 도구였다. 가끔 사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