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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1

오랜만! 제주 힐링 여행

by 박규리

5월 어느 날, 남편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둘째 시아주버니가 분명하다.

제주 두 달 살기를 결정하셨고 10월 둘째 주에 돌아올 예정인데 제주 시누이님 칠순이니 함께 축하하게 제주에 내려와 달라고 했다.

남편은 10월의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끊어놓았다.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받아놓은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큰 형님내외와 큰 시누이님네는 추석 담날, 우리는 그보다 하루 늦게 제주에서 합류하였다.

가족 톡방에 미리 모인 네 부부는 <선녀와 나무꾼>에 갔다 온 사진을 올렸다. 옛날 추억에 잠기는 곳이란다. 모두 교복을 갈아입고 선도부장, 체육부장, 미화부장, 반장 등 역할명을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제주도 고모부님은 모자를 삐딱하게 쓰시고 웃는 모습이 완전 불량학생이다. 흘러간 유행가에 맞추어 교복을 입고 춤추며 추억에 젖은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니 즐거워 보였다. 내가 늦게 간 것을 아쉬워하니 우리 내외는 선생님 부부라 제외시켰단다.

시누이네의 아파트에 딸린 게스트하우스에서 세 가족이 함께 생활하였다. 다음날 아침 다섯 부부가 제주의 엄선된 장소로 관광에 나섰다. 첫 번째는 치유의 숲이었다. 데크길로 가는 내내 삼나무 숲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몸이 불편하신 둘째 시아주버님은 두 달 사는 동안 여러 차례 다녀가셨단다. 물론 전동휠체어를 타고 계셔서 우리처럼 힘든지를 모르신다 하였다. 그러나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차에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에는 조카와 형님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다. 주말마다 엄마를 도우러 제주를 내려온 조카 정ㅇ의 마음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족부사로 걷기를 열심히 한 덕에 숨차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늘 바쁜 남편이랑 제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좋기도 하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점심에 삼대국숫집에서 먹은 고기국수는 별미였다. 로컬푸드이고 시누이님이 조카들 어릴 적부터 가족 회식으로 함께 먹었다는 그 국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했다. 시원한 국물에 얹어진 제주돼지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저녁에는 작은 형님네 참살이 숙소옆에 있는 바베큐장에 모였다.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구워 함께 먹었다. 애써 준비한 두 형님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고기를 맛있게 구워준 정ㅇ이랑, 남편, 그리고 김서방에게 고마웠다. 호박잎에 구운 고기를 올려 꼭꼭 씹어 먹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담근 막걸리까지 한 잔 들이켜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다음날에 우리는 메밀밭으로 향했다. 제주 메밀꽃 위에서 활짝 피어난 우리들의 미소가 맑은 가을하늘 아래를 수놓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여행을 하는 것이 얼마만인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큰 형님께서 제안하여 함께 왔었다. 그때는 조천읍 펜션에서 머물며 여름이라 함덕해수욕장과 비자림을 다녀왔다. 그때도 어부인 고모부가 잡은 고등어를 회로도 찜으로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메밀밭에서 간단히 메밀국수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사려니 숲>으로 이동했다. 치유의 숲보다 길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숲 중간쯤에서 팬플룻 연주를 보았다. 가족이 함께 공연을 감상하니 더 즐겁고 신이 났다.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가 삼나무 숲과 어울려 신비하게 느껴졌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와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목마가 있는 바닷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앞에서 심호흡도 하고 맑은 하늘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었다. 갈대숲 사이로 둘째 시아주버님의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다. 바이브레이션을 가진 떨림이 파도소리와 조화를 이루었다. 다리가 불편하게 되고 나서 마음의 힘듦을 하모니카소리에 의지해서 달래 왔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구성진 소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겠다.

마지막 날 저녁이다. 바닷가에서 예약된 제주시내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시누이 자녀들이 칠순잔치 준비를 다하고 음식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딸과 사위가 마련한 자리였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는 대신 떡케이크를 준비하고 그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신사임당이 나왔다. 두 자녀의 효심을 피워낸 신사임당은 엄마와 아빠의 어깨를 두르고도 남았다. 결국 고모부가 눈물바람을 하신다. 평생 제주에서 어부로 사시면서 어엿하게 키운 두 자녀가 마련해 준 칠순잔치~~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시누이님의 고희 축하 봉투에 "세월이 빚은 품격, 인생의 향기가 머무는 고희, 늘 평안과 건강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라고 적고 봉투를 드릴 때 큰 소리로 읽어드렸다.

힘든 세월을 무탈하게 살아내신 두 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또 건강을 기원하였다. 노래방에서 두 분이 부른 나훈아의 <사랑>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씻고 일찍 잠들려고 노력했다. 이른 비행기로 인해 잠을 설치다가 조카, 그리고 큰 시누이네와 함께 공항으로 와서 각자의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우리 시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늘 배려하고 우리에게 도움 주신 큰 형님과 둘째 형님, 그리고 어려운 세월을 잘 이겨내고 살아오신 제주도 시누이와 인천에 사시는 큰 시누이네 ~~~ 그들의 삶이 내 마음속으로 훅들어온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또 사고로 다리가 불편하게 되신 둘째 아주버님네 가족이 똘똘 뭉쳐 아주버님을 돌보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또 아름답기도 했다.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이 느낌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남긴다. 그 순간들을 다 묘사할 수는 없지만 함께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눈 귀한 시간들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이렇게 제주도에 가서 지지고 볶아냈다. 이번 제주여행은 누군가에게는 칠십 년 만에 한 번 있는 흔치도 않으면서 소중한 시간이고 우리들 각자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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