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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May 11. 2024

편지

5월의 어느 날,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학급은 4학년이다. 학년 부장교사인 나, 학교 일과 개인적인 일들로 공개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자료를 찾아 아이들이 느껴 보면 좋을 수업이 아니라 공개하는 수업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수업을 염두에 두고 보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잔꾀를 부리며,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게 되었다. 편지 쓰기이다. 간단한 편지지만 준비하고 아이들이 편지 쓸 시간을 주면 된다. 물론 쓰기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의 사랑에 관한 경험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예쁜 양식의 편지지 양식은 별도로 준비하였다.

 어버이날이 그즈음이니 안성맞춤이다. 잔잔한 음악을 준비하고 학부모가 교실로 입장하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에게도 대략적인 수업의 방향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하니까. 

 예쁘게 한껏 치장을 한 학부모들 중 아빠도 보인다.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모두 눈빛은 아이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 대략 알만 하기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인다. 아이들과 보이지 않는 듯 눈빛 교환을 하는 사람도 있고, 드러내어놓고 인사하는 아이와 엄마도 있다. 아침에 헤어졌을 텐데 오랜만에 만나는 듯 반갑기 그지없다. 그게 핏줄의 영향인 듯하다. 

 수업을 공개하는 건 늘 신경이 쓰인다. 물론 학부모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자기 아이만 눈에 들어오고 그 아이가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고 활동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다른 아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많은 부분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발표를 할 때는 골고루, 공정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하는 발문도 확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부모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생각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는 모든 부분을 생각해서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늘 그렇게 생각하며 수업을 하고는 있으나 모든 수업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수업을 시작했다. 어버이날 노래도 부르고 연관되는 동영상도 보여주며 좋은 내용의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했다. 물론 감동을 받는 활동을 하는 것이 최고의 수업이 된다. 간단히 편지 쓰기 수업이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단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편지를 낭독한 후 부모님이 온 아이는 부모님께 전달하도록 하였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이루어진 편지낭독과 전달식인 셈이다. 

 간단한 이 활동이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왔다. 성실하고 착한 훈이의 편지 낭독 시간이 되자, 자기감정에 몰입되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가 최근에 아팠는데 학교에 못 올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나 보다. 아픈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 너무 고맙다고 하더니 갑자기 울음보가 터트리고 말았다. 엄마도 눈물을 글썽글썽하고, 다른 아이들도, 교실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도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되고 말았다. 

 마음이 전달되는 가장 큰 효과를 주는 것 중 하나가 편지라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본인이 쓴 편지를 낭독해 보는 것 그 자체가 감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쏟고 가장 큰 감동의 효과를 얻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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