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지나 사람들은 다시 해외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여행을 할 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나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 있다. 개인 물품 보관 문제이다. 혹시, 도둑을 맞을까 봐, 쓰리꾼을 만날까 봐 지갑, 핸드백 잃어버리지 않게, 빼앗기지 않게 단속하느라 마음을 많이 쓰게 된다. 반면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 어린 시절, 우리나라는 못사는 나라였고, 미군을 따라다니며 초콜릿이나 먹을 것을 달라하는 어린이가 많았고,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나라였다. 이젠 우리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도움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해외여행 가면 우리나라 사람을 따라다니며 "천원, 천원" 도움을 달라는 아이가 있는 나라가 있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나라, 참으로 신기한 나라이지 않을까. 외국인이 지하철에서 거금의 돈이 든 핸드백을 잃어버린 후, 지하철 분실물물품보관소를 통해 몇 시간 만에 찾았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하고, 택시에서 잃어버린 지폐를 찾기도 하며 심지어 치매노인이 뭉텅이 지폐를 침대 매트리스에 보관하다 그 자체를 깜빡 잊어버렸는데 찾아주기도 한다. 일전엔 자전거를 타고 가다 호주머니에서 바닥에 흘러내려 버려 잃어버린 지폐 주인을 수소문하고 추적해서 찾아주었다는 뉴스가 올라오기도 한다.
물론 곳곳에 있는 CCTV가 큰 역할을 한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몇 년 전 지리산 노고단 여행했을 때 일이다. 음료수와 과자 등 몇 가지를 가지고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비닐봉지에 담긴 간식을 길가에 그대로 둔 채 노고단 정상을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누군가가 주워 간다면 하는 수 없지 뭐” 하며 그대로 둔 채 다녀왔다. 일행은 누군가가 가져가 버릴 것이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걱정했다. 그러나 그 간식은 우리가 다녀오는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았고 내가 두었던 그 모습 그대로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아무 탈 없이 그대로 찾은 듯 반가웠다.
‘봐? 우리나라 사람들 자기 것이 아니면 손대지 않잖아, 지리산의 그곳은 CCTV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우리 국민의 양심을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침에 남편이 명동 성당 피정 가야 한다며 채비를 하다 말고, 매일미사 책을 넣어 둔 핸드백을 찾더니, 아무리 찾아봐도 없단다. 여기저기 부산스럽게 온 집안을 다 뒤지고 있다. 남편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고르고 골라 사 온 것이기도 하니 혹시 잃어버렸을까 봐 마음이 더 조급해지는 듯 보인다.
“옷걸이에 있는지 찾아봐요.”
“없어.”
“그럼, 책상 아래요. 아님 걷어 놓은 옷 아래”
“다 찾아봤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핸드백이 발이 있어 걸어 나간 것도 아닐 터, 출발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남편은 하는 수없이 현관을 나서며 부탁을 한다.
“지난 일요일에 성당에 가져간 건 맞는데, 그 이후 잘 생각나지 않아. 당신 오늘 성당 갈 일 있지? 가서 한 번 확인해 봐 줘”
남편은 일요일 아침 9시 미사 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일찍 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갔고, 11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던 나는 성당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남편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 자리를 한 번 봐야지 하면서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으니 누군가가 치웠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 오늘은 화요일 오전 10 미사와 성경공부모임이 있으니 성전에 올라가기 전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없을 게 분명하니 사무실로 가서 한 번 물어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찾으리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은 채, 마음을 비우며 성당 로비에서 성모님께 평소와 같이 예를 다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심히 발걸음을 카페로 향했다. 봉사자 두 사람이 주변에서 청소하고 있다. 남편이 앉았던 자리엔 낯익은 가방이 그 자리 그대로 있다. 마치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 연인처럼. 아니 망부석…….
“나를 두고 가다니요. 2박 3일 그 자리 그대로 있었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