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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Mar 28. 2024

기억하기


  “제가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갑니다. 내일 뵙기가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혹시, 다음 날 그 상황을 모르고 병문안 와서 되돌아가게 될까 봐 미리 알려주는 문자였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선뜻 전화를 못하고 한참 후에야 전화를 했다. 배려와 따뜻함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히려 문자 받고 당황해할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이 천국을 가야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서 갑자기 오게 되었어요.” 내 마음을 모두 읽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웰다잉과 자서전 쓰기 팀을 만나면서 만난 분이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해서 겨우 등단한 내가 자서전 출판팀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 국어 교사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분이니 팀에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몸이 아파 함께 할 수 없다는 소식을 주어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다. 온라인으로만 만난 사이이지만 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었다. 날짜를 잡고 그 다음날 가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온 연락이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할 만큼 위중하고 몸과 마음이 아팠을 텐데 온라인으로 만나지만, 우리와 만나는 시간 그는 늘 평상심을 유지하며 활동을 해 온 것이다. 처음 그가 자기의 병을 알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가까운 사람들, 주변에서 그의 상황을 알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태도로 그분에게 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분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염려가 되었다. 그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입원하자, 혹시? 하는 마음에 돌아가신 후 뒤늦게 장례식에 가기보다는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이번엔 대면모임을 겸해서 네 사람이 같이 호스피스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또다시 그 날짜가 다가오자 사모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분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져서 가족 외에는 면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분을 생전에 만나지 못하였고, 겨우 장례식장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색소폰을 부는 그분의 영상이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미소 짓는 그분의 모습은 평소와 같이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미안한 마음을 내 몸에 감고서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오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의 마음을 달래려고 간 것일 수 있다. 사모님과 어린 남매에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도 싶었다. 웰다잉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대한웰다잉협회에서 그분의 영상을 제작해서 만들어 주었고, 장례기간 내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애도수업』은 자기의 병을 진단받고 직면했을 때, 본인과 가족,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경험을 담아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만나기까지 그 과정에서 주변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도움 되지 않는 말들도 소개하고 있고, 이별 후의 애도에 관해서도 잊는 게 상책이 아닌 충분한 애도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나를 돌아보게도 되었다. 내가 그에게 했던 말들, 그가 나에게 해 준 말들, 어쩌면 나는 아픈 사람을 만나 조금 아픈 알량한 내 마음을 위로하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오히려 인간사를 초월한 큰마음으로 나를 꿰뚫고 내 마음을 위로했을 수도 있다. 병문안을 가려고 했던 것, 호스피스 병원까지 방문하려 했던 건 부담만을 주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나마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 건 장례식장을 찾아간 것이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혼자 운전하며 그를 생각했고,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큰 인연이라 한다.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 박○○ 선생님, 그분도 나에게 제법 큰 인연이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족 모두 건강하게 활기차게 지내기를 기원한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 여기 또 한 명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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