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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Sep 26. 2024

또 다른 이기심

    평일 점심시간 즈음의 낮 시간, 지하철은 한산하다. 그렇다고 빈자리가 있는 건 아니고 몇몇 사람만 서 있다. 나도 지하철을 타고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보며 서 있었다. 지하철을 탈 때,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웬만해선 앉지 않는다. 가급적 서서 가고 싶어 한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 발이 편하여 굳이 앉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도 한다. 많이 걸어 다니니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니게 되었고, 코로나가 재유행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니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리고 있다. 머리는 염색을 했다. 가볍게 걸으며 허리는 최대한 꽃꽂이! 젊은이처럼.   

  최근 들어 오늘이 두 번째이다.

  내가 서있는 앞자리 젊은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선뜻 일어섰다. 그리고 출구 쪽으로 가서 서 있다. 앞자리가 비었으니 그냥 서있기도 그렇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그 친구에게 그냥 앉으라는 말도 못 하고, 고맙다고 말도 못 하는 미묘한 상황이다. 다음정거장 그다음 정거장에서도 그 친구는 내리지 않았다. 무심한 듯 내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멀찍이 가서 서 있으니 와서 다시 앉으라는 말도 못 하고 고맙다는 말도 못 하게 되었다. 젊은 친구의 배려이리라.

  일전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자리양보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여기 앉으셔요.”

  “괜찮아요”

  “곧,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주고받으며 인사라도 했다. 그러나 자리양보받고도 기분이 좀 그렇고 그랬다. 젊은 친구들이 양보해 주지 않을 때 기분이 좋았다. 젊게 보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가릴 것 가리면서 조금이라도 젊은 척하고 있었는데 두 번씩이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창들 모임에서 젊게 보인다고 하면 그 친구는 은근히 자랑을 했다.

  “지하철을 타도 내게는 자리양보도 해 주질 않아.”

 섭섭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랑하는 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서는 그런 말 하는 친구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이젠 정말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러나, 아직은 내게 자리양보 안 해주는 것이 고맙다.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을 때, 정말 기분 좋았던 때가 최근에 있었다. 한산한 지하철에서 좀 늦은 시간이었다. 출입구 가까운 곳에 서 있었는데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섰다. 늦은 시간이라 앉아볼까 말까 하면서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젊은 친구가 앉으려고 다가오다가 나를 보더니 다시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으려고 했다. 손에 노트북 가방도 들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나의 피곤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아니, 괜찮아요. 곧 내리니 앉으세요.”

 “안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얼굴표정이 밝아지면서 자리에 앉는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이에게 피로회복제 선물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두 아이 키우며 출퇴근하던 피곤한 내 모습. 젊은이라고 늘 생생한 건 아니다.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던가. 눈뜨면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순서를 잘 생각해서 처리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지각할 수도 있고,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정신 바짝 차려서 살아야 했다. 

 출근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퇴근할 때까지 주어진 일정에 조금도 소홀할 수가 없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했다. 내 차를 갖기 전 퇴근할 땐 버스를 타고 다녔다. 퇴근할 때 버스에 타면 혹시, 앉을자리가 없나 빈자리부터 찾았다. 자리가 있으면 행운이었다.

 젊은 친구가 자리양보하지 않으면 젊게 보이는 것 같아 좋고, 내가 젊은이에게 자리양보한 건 젊은 시절 나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행운의 시간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또 다른 나의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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