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좋아하는 군고구마와 미역국을 싣고 작은애 집으로 향했다. 며느리는 큰 손녀를 데리고 CBS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위해 나가고 없을 것이다.
“띡, 띡, 띠디디딕”문을 열기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니, 안에서 “엄마, 엄마”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오는 줄 알고 반기는 작은 손녀이리다. 애가 실망할까 걱정하며 문을 열었다. 다행히 미소로 맞아 준다. 안으로 들어가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눈빛을 주고 있다. 이제 겨우 돌을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손녀가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번쩍 들어 내 품에 안았다. 손녀는 ‘포오옥’ 안겨 자기 얼굴을 내 이마에 갖다 대며 친근감을 표현한다. 자주 가지 않아도 할머니를 알고 반겨준다. 참 신통한 일이다.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아들이 타준 커피 한잔을 먹으며 앉아 있었더니, 손녀가 아직 말로 표현 못하면서도, 나와 눈을 맞추며 장난감을 갖고 와서 놀아달라는 몸짓을 한다.
함께 놀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보여 신통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보람이 있다. 가만히 보니 못 보던 새로운 장난감이다. ‘마치 이것도 있어요.’ 자랑하는 듯하다. 무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사륜구동 특별한 모양의 자동차와 포클레인이다. 내가 보아도 신기하다. 무선 시스템이지만, 앞뒤, 양옆으로도 움직이고, 포클레인도 아래·위로 움직이며 신기한 소리까지 낸다.
한참을 놀더니 이젠, 작은 방으로 들어가자고 나를 끌어당긴다. 따라가 보았다. 예전에 한 번 갖고 놀았던 것으로 개구리로 구슬을 잡는 게임도구인데 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더니 재미있게 따라 했었다. 그게 생각났던 것인지 한참 동안 그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곤 다시 거실로 나가자고 한다. 거실로 나가려면 지금 재미있게 놀았던 것이니 개구리 게임을 가지고 나가야 할 것 같아 그 장난감을 들고 손녀 뒤를 따라 나왔다.
이번엔 처음에 보여주었던 무선 자동차를 가지고 놀겠다고 하는 듯하다. 그리고 내가 작은 방에서 들고 나온 것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것을 자기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다시 작은 방에 갖다 두는 것이다.
그 표정은 “이건 작은 방에서 하는 장난감이어요.” 하는 듯하다. 작은애 집의 룰 인가보다.
할머니 인, 나는 손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보인다. 마음도 보인다. 이 정도면 손녀와 잘 놀아주는 자상한 할머니 아닌가.
한참을 놀다 보니 손녀가 식탁으로 가서 위쪽을 자꾸 올라가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가져간 고구마를 꺼내어 보여주며 “고구마 줄까?” 했더니 반기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한다.
당장 고구마를 꺼내 정성껏 작은 숟가락으로 긁다시피 조금씩 먹여보았다. 너무 잘 먹는다. 목이 막힐까 봐 물과 함께 조금씩 먹였다. 고구마 하나 먹으면서도 손녀는 자기가 숟가락을 사용해서 먹겠다고 손짓으로 몸짓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에서 어렸을 적아들과 아들 키울 때의 내 모습이 보인다.
아들 키우던 시절로 따라 들어가 본다. 출퇴근하며 바쁘게 살아왔던 때의 일이었다고 변명하며 생각해 보기로 했지만 엄마로서 과연 어린 아들의 마음 읽기는 잘해 왔었던가 의문이다.
두 아들을 챙겨서 나가기 위해 아침밥을 먹일 땐 아들의 마음 표현은 읽을 여가가 없었다. 아이와 대화하고 표정을 읽고 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출근준비하며 아이 가방 챙기며 바빴던 때만 떠오른다. 밥을 빨리 먹이기 위해 입에다 거의 밀어 넣듯 하기도 했다.
장난감으로 함께 놀아 준 기억은 거의 없다. 대부분 “엄마 일 할 동안 갖고 놀아라.” 했던 방식이다. 아들 둘은 크게 보채지 않고 둘이 친구처럼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그게 감사했다.
어떤 땐 문제집을 주며 “어디서 어디까지 풀어라.” 한 후 뒤돌아서 잠시 일을 보고 있으면, “엄마, 다했어.” 하고 금방 갖고 왔다. 빨리 잘해서 칭찬받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뭐 벌써 갖고 오는 거야, 좀 천천히 해 갖고 오지….’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만 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곤 또 다른 과제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손녀의 몸짓, 얼굴표정 하나하나에서도 의미를 알아듣고 그에 맞추어 주려고 하는 내가, 아들의 마음 읽기는 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묻는다.
‘왜 그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