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하는 시즌이 시작됐다.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1월에서 3월까지의 시기를 나는 가장 싫어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30대를 넘어가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호불호였다.
사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할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는 이 시기는 일단 날씨부터 비호감이다. 물론 12월부터 추운 해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일 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즌인 크리스마스가 12월에 있기 때문에 어쩐지 12월은 한 달 내내 포근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이런 취향은 미국에서 사는 동안 시작된 듯하다. 핼러윈이 끝나고 풍요로운 가족 분위기가 만연한 Thanksgiving이 지나면 모두가 너그러워지고 사랑을 나누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12월 초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거의 한 달 내내 설레는 기분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게 된다. 이건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12월부터 캐럴을 듣고, 올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요리를 해 먹을지 고민하며, 휴대폰 배경 화면을 크리스마스 사진으로 설정하고, 매주마다 그 사진을 바꾸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설렐 수 있다.
하지만 12월이 끝나자마자 새해가 시작되면 손바닥 뒤집듯 가장 좋아하는 시즌에서 가장 싫어하는 시즌으로 바뀌어 버린다. 1월의 추위는 살풍경하고 매섭고 뼛속까지 아린다. 이런 날씨가 되면 내 신체는 모든 움직임을 거부한다. 그 어떤 것도 하기 싫어진다. 하지만 또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온 세상은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등을 떠밀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시즌을 싫어하는 이유다.
어쩌면 내가 나이에 비해 대단한 걸 이루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올해는 이루겠노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건 내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거창한 다짐 없이도 나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름 건설적인 취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게으르고 에너지가 없다고 소문난 나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마 나 따위보다 더 성실하게 매일을 살아가겠지.) 이미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나의 행복의 중요한 것은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태도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려면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이건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 나의 속도에 맞게 무언가를 이룰 거라고 생각하는 내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반면, 새해만 되면 온 미디어는 버킷리스트, 새해 목표, 이루지 못한 목표 점검하기 등의 내용으로 가득 찬다. 남들이 세운 새 목표들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여행을 가기 힘든 사람들도 올해는 해외 여행을 한 번쯤 가야만 할 것 같고, 공부할 환경이 안 되는 사람도 뭔가 배워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새해 시즌도 특별히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매사에 호불호가 있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새해맞이 다짐이 꼭 나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거창한 계획보다는 작년에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면 ‘올해는 그런 점을 주의해야지.’, 혹 부족한 점이 없었다면, 그저 '올해도 작년처럼 보내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인위적으로 목표나 계획을 세우는 건 불편하고, 알고 싶지 않은 남들의 새로운 목표를 아는 건 불쾌하며, 모든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과도한 고양감은 부담스럽지만, 이제는 나도 외부 영향에 어느 정도 무던해진 것 같다.
‘올해도 나만의 속도로.’
이것이 나의 유일한 올해의 다짐. 그리고 아마도 내년, 내후년의 다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