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첫어"
남편은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지만 가끔 보통 한국인이 잘 쓰지 않는 뉘앙스나, 교과서에서 나오는 정직한 문장을 사용할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남편과 이야기하다보면 뜬금없이 빵 터진다. 특히 싸울 때는 내가 빵터져서 재밌게(?)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심각한 이야기 중일 때 내가 혼자 웃음이 터지면 남편은 영문을 모르고 당황할 때가 있다.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1. 결혼 하기 전,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무슨 일이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입으로는 화가 안 났다고 했지만 나는 표정과 행동에 다 티가 나는 성격으로 그때도 아마 온 몸으로 나 화 났다고 티를 다 낸 듯하다. 그러자 남편이 "너 왜 나 미워해?"
2. 내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컵을 찾고 있으면 원래는 "컵 필요해?" 라고 해야하는데 남편은 "컵 줄래~?!" 라고 말한다. 내가 처음에 이해를 잘 못해서 "응? 뭐라고?" 라고 하면 내가 못 들은 줄 알고 큰 소리로 여러번 "내가 컵 줄래?!" 라고 말해준다.
3. 친정 집에 가서 내가 늦잠을 자고 있으면 나보고 "엄마가 일어나래"
4. 내가 평소에 "뻥이야" 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남편이 어느날 장난을 치고 "내가 벙쳣어"
5. 우리는 침대가 벽쪽에 붙어 있고 내가 안쪽에서 자는 편이다. 그러다 내가 어쩌다가 밤에 화장실 갈때는 부득이하게 남편을 건너서 지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 남편 왈 "여보~ 나 발 올렸어"
6. 웨딩 촬영을 하기 전 샵에서 머리 손질을 하는데, 원장님이 해준 스타일이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남편이 "아줌마가 머리 이렇게 해줬어"
7. 어쩌다가 우리가 토론을 가장한 싸움을 하다가 내가 급발진을 하면 남편 왈 “우리 싸우지 말자. 우리 서로 사랑해야지”
몇 년 전, '동상이몽' 이라는 연예인 부부 예능에서 우효광님이 추자현님에게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국어를 애기처럼 귀엽게 말해서야"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백프로 공감한다. 아마 우리와 같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상대방의 모국어를 배워서 같이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같은 말을 해도 남편은 마치 7살 아들이 엄마한테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국제커플의 장점 중 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