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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janice Jan 26. 2023

떠나는 이의 소회

오늘, 4년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희망했던 것도 있고, 기관을 선호하는 내가 오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기에 1순위로 적어냈던 곳.


 2018년 추운 겨울 30대의 끝자락에 맞이했던 이 곳은, 크고 웅장한 외형 만큼이나 내겐 자랑스러운 곳이었다.


어디가서도 떳떳하게 이곳에 근무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 순간 내 마음은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업무에 있어서도 내가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됐었다.

다른 어떤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조금도 없을 만큼, 철저하게 내 경계 안에서 나의 일만 하면 됐었으니까.


쉬는 날이면 몸은 자유속에 있을지언정,

마음과 머리는 온통 직장 사무실에 자리잡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만은 주말이든 연가일때든 온전히 내 몫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만큼 깔끔했고 경계가 명확했던 업무였다.


동료들도 대체로 좋았다.

물론,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지금 그 어떤 상처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다.

그때의 그와 그녀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나의 사정이 있었던 것 처럼.

나로인해 누군가 받았던 상처가 있었더라도 이 또한 그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 2년 정도를 함께 보낸 동료들은, 정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연고도 없는 시골에 갇혀 시간이 흐르기만 바랐던 나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사람들.

나를 웃게 해주었고, 나도 이따금씩 그들을 웃게 했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으며 함께 욕도 했다.

그들과 보낸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다채로웠고 행복했다.


출근을 하는게 지겹고 힘겹다는 생각을 했던 한해도 있었다.

깔끔하고 경계가 명확하다는 장점뒤에 무시무시한 감사의 압박과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안겨준 내 업무도,

내겐 양날의 검이었다.

4년간 해낸 업무였기에 익숙함도 있었지만, 익숙함 뒤에 숨겨져 있을 나의 여러 실수에 대한 불안함도 컸다.

이따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순간 나는 새로움을 원했고, 변화를 갈구했으며 어떤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2022년 가을, 인다(인문학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더욱 강렬하게 새로움을 갈구했다.

내 인생에 변화의 잔물결이 일었고, 인생을 항해하는 돛의 방향을 튼 순간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로 나는 지금, 마지막의 순간을 맞이한다.

마지막 출근, 마지막 업무, 마지막 만남.

아쉽고 울컥한 마음이 든다.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정들었던 이곳과 동료들과의 헤어짐은 내게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어젯밤 마지막 회식을 하러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어느때보다 멋지게 우뚝 선 건물 하늘 위로 예쁘게 떠있는 초승달이 내 눈길을 멈추게 했다.

이 곳은 늘 밤의 풍경이 예뻤다. 시골 하늘 답게 하늘은 높고 별들은 총총했다.

밤하늘에 별과 달을 벗삼아 퇴근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떠나는이의 아쉬움 한방울, 떠나는 곳에 대한 회한 한방울, 떠나갈 곳에 대한 두려움 한방울..

이윽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내게,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여기서 네 스스로가 느낄 만한 감동을 느끼며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오늘 나는 이곳을 떠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내 삶에 새로운 문을 열게 된다.

4년 전 , 이곳에 왔었던 그때의 그 설렘과 기쁨을 이제는 다른곳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 새롭게 오는 모든 이들도 그때의 나 처럼, 지금의 나처럼 새로운 삶의 문에 기쁘게 발 디디길 바란다.


그리고 나와 함께했던 사랑하는 동료들, 나와 함께해줘서 고맙고 나의 투정을 받아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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