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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Jan 26. 2023

혼자 마시는 커피를 좋아하세요?

나는 혼자 무엇을 하는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혼술, 혼밥, 혼행이 유행할 때도 혼자서 무언갈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자신 없었다.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성향이 일정 부분 있어서일까, 생각해 보면 또 나의 부정적인 단면을 꺼내 보이게 되는 일이겠지만 ‘스스로, 혼자, 자립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건 사실이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흔한 카페에도 거의 가지 않는다. 내가 카페를 갈 때는 점심시간 후 동료들이 커피를 마시자고 할 때나, 남편이 아아를 먹기 위해 가자고 할 때 정도.


카페의 비싼 커피값이 어이없고, 다른 음료도 물로 대체하면 될 것을 밥값을 주고 사 먹는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 원, 이천 원 정도의 싼값의 커피 프랜차이즈가 생기긴 했지만 그 또한 내겐 의미가 없다. 난 커피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조금 쓰거나 시다거나 한 정도?


그럼에도 가끔 커피를 마실 때도 있긴 하다.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ㅎㅎ 그건 아니고 더운 여름엔 나도 가끔 커피가 생각날 때도 있다. 아니면 느끼한 음식을 먹고 난 후 입가심 정도.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굳이 찾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아무튼 카페는 내게 먼 공간이고 어색한 곳이다. 막상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업을 가진다면 책과 커피가 있는 북 카페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카페를 어색해하고 있었다니.


오늘 그런 나를 시험하기 위해(?), 또 혼자만의 시간을 나도 경험해 보기 위해 퇴근 후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왜인지 너무나도 집에 가기 싫었고 정말이지 오늘은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


이런 적이 자주 있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그냥 늘 차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이렇게 카페를 혼자 온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일단 우리 동네답게 퇴근 무렵 시간이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 점이 좋았다. 조용하게 혼자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메뉴를 고르며 커피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점원에게 물었다.


“혹시 과일주스도 되나요?”

“그럼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딸바(딸기바나나주스)를 시켰다.


“딸바 하나랑 크로플 하나 주세요 ”


왠지 뿌듯했다. 나도 뭔가를 혼자 할 수 있는데, 별것도 아닌데, 왜 난 못했을까! 못한 걸까 안 한 걸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잠시 상념에 빠진 순간 진동벨이 울렸다. 딸바와 크로플을 받아 들고 손님이 없는 2층으로 올라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올겨울 최저기온을 기록한 오늘의 차가운 공기도 카페 안에서만큼은 따듯하고 포근한 공기가 되어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푹신하고 넓은 의자가 맘에 들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초승달의 모습은 마치 뿌듯함에 한껏 미소 짓는 내 입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한동안 업무의 압박으로 듣지 못했던 빨간 모자 선생님의 영어강의를 듣고 친구에게 추천받은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었다.


평화롭고 또 평화로운 시간. 딸바와 크로플을 한입 가득 음미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오늘을 계기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반갑게 맞이해야겠다 생각해 본다. 해보면 별것도 아닌데, 오히려 이 작은 시도로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용기를 가질 수 있는데 왜 난 그동안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혼자 카페를 방문했다는 이 한 가지 사실로 이토록 뿌듯해하는 나란 사람,


참 귀엽다. 귀엽고 귀엽지만 애처롭기도 하고 그래서 안아주고 싶은 사람 바로 나. 오늘 커피는 아니지만 혼자 딸바를 마시며 카페 구석에 의젓하게 앉아있던 내 모습이 대견스럽다.


나는 내일부터 당당하게 누군가에게도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마시는 커피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혼자 마시는 딸바를 좋아한답니다.”


왠지 나이 40에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다. '진짜 어른의 취향'이 과연 딸바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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