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이나 병원이 집이나 카페처럼 편하면 환자들이 잘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아무리 편해도 가기 어렵고 긴장되는 곳이 병원인지 모르겠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검진은 비교적 체계가 잘 되어있다. 일정 나이가 되면 그때에 필요한 가장 최소한이지만 도움이 되는 검사들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안내차 공지도 나간다. 1차 검진은 일찍부터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건강검진 대상자 조회를 통해 내가 검진 대상자인지, 어떤 검사들이 해당되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1차 검진이라고 하는 일반건강검진은 만 20세 이상이면 해당된다. 20~30대가 검진을 챙겨서 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당장 불편한 게 없고 일상에 치이다 보면
사실상 제일 중요한 건강이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Photo by Georgia de Lotz on Unsplash
오늘은 지난주에 검진을 하신 70대 할머니께서 결과를 확인하러 오시기로 한 날이다. 일반검진으로 흉부X선 검사,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하셨다. 그리고 불현듯 알게 되어 조절이 필요한 빈혈로 내시경 검사도 필요한 분인데 이번 검진에서 위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은 받으시면서 대장내시경을 추가로 같이 진행하셨다. 워낙 말씀을 안 하시는 편이고 검사 전에는 내가 문진을 하지 않아 자세한 상황은 몰랐다.검사 당일 직접 내시경을 하면서 긴장을 하게 되었고 이 할머니께서 결과확인을 위해 내원하시는 것을 손을 꼽아 기다렸다.다행히 예정대로 잘 오셨다. 누군지 모를 보호자 3분과 같이 오셨다.
재내원까지 내가 꼬박 기다린 이유는 이렇다. 할머니는 꽤나 심한 빈혈이 있으셨다. 빈혈수치가 정상 하한치를 12 정도로 보는데 할머니는 약 1달 전에 잠깐의 실신 증상이 있었고 증상 이후 바로 다른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빈혈수치가 5가 나왔다고 한다. 대충 비유하자면 피가 절반도 없는 느낌인 것이다. 당연히 당시 검사했던 병원에서는 대장내시경 등 추가 검사 권유가 있었지만 하지 않으셨다가 우리 병원에 오게 되신 거였다. 결과 설명 전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더 했다.
나 : 할머니 그동안 평소에 불편한 거 없으셨어요?
할머니 : 지난여름에 하도 더웠어서 그저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쓰러져있었어요. 난 여름이 많이 더웠어서 그저 더워서 그랬나 싶은데...
아차 싶다. 고령인 분들이 항상 열이나 탈수에 취약한데 특별히 기저질환도 없으셨던 할머니는 갑자기 몸 상태가 확 나빠지는 경험을 하고도 그저 더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다. 누가 옆에 있었다 해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은 추측만 속으로 하면서 질문을 더 던졌다.
나 : 그러면 그때 이후라도 다른 거로 평소 불편한 거 없으셨어요? 속은 안불편하세요?
(사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질문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무어라도 문제가 되고 본인이 불편할만한 것들을 자꾸 말씀하시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할머니 : 소화도 잘 안되고 그냥 배가 불편해. 변은 보는데 그냥 뭔가 불편해. 변 볼 때 언젠가 피도 나왔어~
(또 한 번 아차 하는 순간이다.)
나 : (침착함을 유지하며) 배가 아프거나 하진 않으셨어요?
할머니 : 배가 아프진 않았어.
나 : 배 어디가 불편하셨어요?
할머니 : 여기~
할머니께서는 배꼽 오른쪽배를 빙빙 둘러가며 만지셨다.
이미 문답이 오가는 상황에서 시간은 시간대로 길어지고 아직 설명은 시작도 전인데 뒤에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다 났다. 일반 진료나 검진했던 분들 설명이 차례대로 접수되어 순서대로 들어오기 때문에 잠깐 소화제나 감기약을 타러 오신 분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검진한 분들 결과 설명이 있으면 보통 바쁜 게 아니다. 진료를 길게 봐드린다고 내 월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원장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이고 기다림이 길어지는 환자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간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 : 그럼 설명해 드릴게요. 잘 들어보세요~
이번에 검사 참 잘하셨어요.
그런데 혹시 오늘 오신 보호자 분들은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같이 오신 보호자분들은 가족이나 친척은 아니었고 교회 같이 다는 분들이라고 했다. 워낙 개인정보 관련된 부분이라 일반적으로는 법적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게 되지만 그런 보호자가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빈혈수치가 이전 검사보다는 조금 올랐고 당장 컨디션에 문제가 될 다른 큰 혈액검사의 이상은 없었고 위내시경도 괜찮았지만 대장내시경에서 대장암이 확인되었다. 애석하게도 할머니가 불편해했던 위치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내시경 사진과 조직검사 결과를 보여드리며 설명하자 예상대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힘들어하시는 모습이다. 의사들이 이런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경우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반복해서 해도 익숙하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 나는 이내 설명을 이어갔다.
나 : 할머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왜 할머니가 불편했던 건지 이제 알게 된 거예요. 이제부터 그럼 더 정확하게 몸 상태를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치료 방향이 결정될 거예요. 그래서 몸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정밀검사들을 하실 수 있도록 상급 병원으로 의뢰서를 써드릴 거고 자료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말로 해도 내용이 좋지 않으니 잘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결과 듣는 내내 한숨만 쉬시던 할머니께서 마지막에 저렇게 말씀드리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누구나 갑자기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덜 기분 나쁘고 그 과정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조금이라도 아실 수 있게 하는 게 의사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단 그렇게 설명까지 마치고 환자분을 먼저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하고 보호자분들과 얘기를 더 했다.
나 : 이렇게 오신걸 보니 돌봐줄 법적 보호자가 없으신가 봐요?
보호자들 : 네. 아무도 없으세요~ 평소에 잘 알아서 같이 왔어요.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니 믿을만하고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가족 같은 분들이라 생각하고 더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드렸다.
나 : 흔히 이야기하는 몇 기이냐 하는 것은 아직 모르고 이제 CT나 다른 추가 검사들을 통해서 평가를 해야 합니다. 가장 빠른 곳에서 진료 볼 수 있는 곳으로 알아봐서 의뢰를 해보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연세가 있으신 경우는 간혹 안 좋은 소식을 듣고 바로 포기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몸 상태도 알 수 없고 치료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어떤 치료를 하게 되더라도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하시긴 하겠지만 그마저도 이르지 못하면 당연히 예후는 안 좋고 본인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게 돼요. 그러니 일단 어느 정도 검사도 하실 수 있도록 주변 분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보호자들 : 근데 치료를 하게 되면 저희가 뭘 못하는 거죠? (여기까지 듣고 혹시 같이 온 분들이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약간 뒷걸음질하시려나 싶었지만 역시 그런 것은 아니고 할머니를 돕고 싶은데 가능성을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 예를 들어 서류에 서명하는 거라든지...
나 : 네, 법적보호자가 필요합니다. 그런 부분도 같이 확인을 해주시면 좋아요.
보호자들 :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보호자 중 한 명이 나서며 보호환 자니까 부담은 없지 않을까 한다는 식의 첨언을 한다.)
나 : 일단 암으로 확진되면 중증등록이 돼서 혜택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큰 병원에 보면 사회사업팀이라는 게 있어요. 어떠한 기준이 있겠지만 심사를 통해서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는 도움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진료 가셔서 검사하면서 그쪽 병원에 문의해 보세요.
보호자들이 고마워하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갔다. 시간은 말도 안 되게 흘렀고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가급적이면 불편하지 않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쓴 나는 목이 잠겨오고 탈수가 된 것처럼 헛헛했지만 바로 다음 환자 차트를 열어 진료를 이어갔다.
Photo by Nik on Unsplash
어쨌든 할머니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내 가족은 아니지만 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검사를 받으신 것에 괜히 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검진도 하고 진료를 보다 보면 별게 아닌데도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접한다. 검사를 하고도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다. 국가검진이야 결과지가 발송되니 그것만 믿고 그냥 보내지만 한참 뒤에야 결과지를 봐도 몰라서 또는 결과지를 보니 뭔가 표시가 됐는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당뇨나 고지혈증, 빈혈 등 치료가 필요한 경우인데도 뒤늦게 오시는 경우도 많이 본다. 정말 더 드물게든 뒤늦게 오는 분보다 아예 결과지 자체를 확인도 안 하는 분들도 있었다. 또 할머니처럼 70~80대가 되도록 여러 번 우편이나 문자로 국가검진 안내가 갔을 텐데도 검진 자체를 한 번도 안 받아보다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뒤늦게 검진한번 하겠다고 오시는 분들도 있다.실제로 할머니처럼 70대의 할아버지께서 처음 검진하신다고 오신 적이 있는데 혈변 증상도 없었고 가끔 변비나 있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지만 마찬가지로 대장암이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제발 몸을 살피는 일을 가볍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꼭 암이 아니더라도 가끔 만성질환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약 먹기가 부담스럽고 귀찮아서 더 스스로 조절해 보겠다고 다음에 안 나타나시는 분들도 있고 추적관찰을 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람의 본능 때문일까. 문제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문제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초기에 잘 잡으면 평생 약을 먹거나 합병증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
빈혈이 있으면 일단 출혈 관련 증상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고 명확히 알고 있는 출혈증상이 없더라도 위장관출혈을 배제하기 위해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는 필요하다. 여성분들은 산부인과적 검진이나 검사 경험이 없다면 산부인과 진료도 체크하시도록 설명을 드린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확인하고 뚜렷한 출혈 원인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도 빈혈 상황에 따라서 빈혈약을 먹으며 경과관찰을 잘하는 것이 좋다.
2.
흔히 혈변이라고 쉽게 통칭하는 변을 볼 때 피가 나는 증상(변의 섞이거나 묻어 나오는 경우, 변 자체가 빨갛게 피로 보는 경우 등)은 꼭 확인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흔하면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건 우리가 흔히 치질이라고 말하는 변화가 있고 변을 볼 때 자극이 돼서 가끔 잠깐씩 동반되는 증상일 수 있지만 장 안에서 암이나 심한 염증이나 궤양처럼 출혈의 원인이 될 만한 게 있는지를 대장내시경으로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식도, 위, 십이지장 등 위내시경으로 보는 상부위장관에서도 많은 양의 출혈이 있다면 선홍색의 혈변이 가능하다. 양이 많지 않거나 이미 지나간 출혈일 경우 위장관을 거치며 항문으로 내려올 때까지 선홍색의 피가 색이 변하면서 까만 변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까만 변 또는 흑색변을 본 경우도 위내시경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