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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밤클라쓰 Jun 26. 2023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생각.

이슈     

몇 달간 아니 어쩌면 몇 년간 끙끙 앓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문제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헝가리 등 이웃 국가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헝가리 국민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방 한 칸을 우크라이나 피난민 가족들에게 내어주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헝가리 국민들은 아마 전쟁이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정도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헝가리에 공급하는 가스를 끊어 버렸다. 그래서 에너지 값이 폭등하게 된다. 방 한 칸 내주었던 헝가리 국민들의 '공과금'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게다가 언제 전쟁이 끝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자 헝가리 국민들은 점차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다시 나가달라고 말하게 되는 추세가 되었고 피난민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가 되었다. 다른 구호기관들이 도와주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들은 늘 발생한다.    


헝가리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계속 받아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받아줄 의무도 전혀 없다.

이러한 이슈에도 내가 고민하는 주제가 담겨있다. 인간은 자기 한계를 기준으로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한다. 생존 욕구와도 관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면 어떨까.          


현실          

친구들과 나는 맛집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수다를 즐긴다. 만약 내가 이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아마 몇 달 동안 생존할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음에도 나는 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에서도 기초 욕구가 다 채워지고 난 뒤 느끼게 되는 상층부에 위치하는 욕구일 것이다.) 

억지스럽게 느껴진다해도 이기적인 선택과 사회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맞물려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고 승려가 되어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선택한다. 즐거움의 가치가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목숨의 가치를 매우 강조한다. 생명은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며 어떤 가치와 비교하여도 가장 최상단에 있는 가치라고.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이 존경을 받는 것이고 응급실에서는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고분군투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사실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런데 그런 이기심을 딱히 마주 보려 하지 않고 그러한 이기심이 존재한다는 것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다만, 한 달에 얼마간을 후원하며 양심의 부채를 덜고 있을 뿐이다. 또한 누구도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병원도 다음과 같이 병원을 홍보하지 않는다.

'우리 병원에 오는 손님만 환영합니다. 결제 많이 해주면 더 환영합니다. 사실 다른 병원 가는 환자들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다른 병원 가지 말고 우리 병원 오세요.' 

반면, 환자 한 분 한 분을 가족처럼 여기고 정성을 다해 진료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환자들을 어떻게 가족처럼 돌볼 수 있겠는가. 그저 추구하면 좋을만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추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이 주제를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가 무얼까 되짚어 볼 때면, 어릴 적 경험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근래에도 이기심에 대해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1~2년 전쯤 나는 마포구로 이사를 간 뒤, 입주한 아파트에서 시공사의 부적절한 일처리와 잘못 건축된 부분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관계자들과 공방을 벌이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환멸을 수차례 느꼈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무력함을 느꼈으며 인류애를 상실하는 감정을 경험했다. 또한 연대하지 않는 이웃들에 대한 실망감도 느꼈다. 

인간이 가진 이기심은 부정부패한 결단과 잘못된 일처리를 통해 위와 같은 부작용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시공사와의 싸움에서 나는 인간 이기심의 한 면을 봤는지 모른다. 


질문     

K는 이런 문제에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이 문제는 사실 살아가면서 굳이 생각할 필요가 별로 없는 주제이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문제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은 개인적 상황의 특수성이라 말할 수도 있고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명확히 파악함으로써 내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끙끙 앓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친한 친구들, 독서모임 참가자들, 취미 모임의 모임원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기관의 대표 P, 앞서 1화에서 말한 영리적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의 대표 S, 그리고 K 등이다. 


때로는 척추 교정을 받으러 갔다가 치료사와 수다를 떨며 이러한 주제를 꺼내게 되기도 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눈 이야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느끼는 것들을 써 나가려고 한다. 

이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나의 환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대한 주제로 이어진다. 이 말은 내가 환멸을 통해 겪게 되는 무의미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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