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 두 번째 기록.
이기심을 감추는 가면.
나는 아사에 대해 공포가 있었다. 아사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형태가 음식이기 때문이다. 배고파 죽겠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 것도 그 이유이다. 또한 내가 1끼를 굶었을 때 느끼는 고통을 통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가늠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발생하더라도 그를 구원할 의무는 없다. 나는 K에게 이러한 사회 구조가 이기적이고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K는 세상이 이기적으로만 흘러가는게 아니라며 전쟁 영화의 예시를 들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한 군인이 낙오된다. 낙오된 군인이 앞서가는 동료 군인에게 '너라도 빨리 탈출하라'고 말한다. (이때 주로 감동적인 BGM이 깔린다.) 인간은 죽음과 같은 극단적 위험에 처하면 '나만은 어떻게든 살아야 돼.'라는 이기심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고통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대한 시간 차이의 문제다. 성경 역사 속에서는 배고픔 때문에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한 한 실험에서는 피실험자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했을때, 피실험자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식을 죽였다는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생존 욕구는 자식을 포기할 만큼 크다는 이야기이다.
K가 말했던 영화 속 낙오된 군인과 앞서가던 동료 군인의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 속 대화는 즉사가 가능하기에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죽음의 고통은 방식을 불문하고 고통스럽지만, 즉사의 고통과 아사의 고통은 지속되는 시간에 따른 무게에서 큰 차이가 있다.('성인'들이라면 모른다.)
나는 비영리 회사의 대표인 B를 만나 해물찜을 먹으며 이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먼저 우리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자신과 같은 비영리 기업이나 자선단체가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기심에 의해 희생되는 다른 누구를 내버려 두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가 희생되는 사람을 도우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세상이 이기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 사회를 포장하고 교육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함만을 강조하는 마케팅 문구나 전래동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오래전 시절에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흥부 놀부와 같은 전래 동화를 들려주고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교육을 했었다. 요즘 교육계에서는 그런 이분법적 가치관 교육을 지양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티브이를 틀면 많은 드라마와 프로그램에서 선악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어디선가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완전한 선도 없고 완전한 악도 없다는 글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기심이란 선하거나 악한 개념이 아니다. 인간에게 내재한 생존 본성이다. '상황'에 따라서 선하게도 악하게도 비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이기심을 부정할 것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기심은 선한 결과나 악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비롯된 결과는 선이나 악이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악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면 그러한 이기심 또한 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