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새벽에 눈을 떠 책상 앞에 앉았다. 읽다 덮어둔 책을 열려다 핸드폰에 손이 먼저 갔다. 아침 루틴을 지키자고 다짐했지만 매번 핸드폰을 먼저 만지는 바람에 일정이 다 꼬인다. 책상과 책장으로 거의 가득 찬 자그마한 방이 핸드폰 세상이 열리면 하루 종일 싸돌아다녀도 여지가 있다. 그래서 핸드폰을 벗어날 궁리를 하는 차에얼마 전 지인이 10킬로 마라톤 뛰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아침에 딱 어울린 생각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뛰지 않아서 5km도 걱정이 되었다.
일단 운동복을 찾아 꺼내 입고, 신발끈을 묶으며 2017 부산국제광고제에서 DESIGN 부문 Grand Prix를 수상한 Nike사의 Nike lunar Epic 광고에 나오는 필리핀의 Unlimited stadium을 달리기라도 할 듯이 비장한 각오를 한다. 준비를 마치고 집사람 깰까 봐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내려가니 벌써 부지런한 몇몇 이웃을 만난다. 아직 낯설어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같은 빌딩에 살고 있다는 친근감이 있다. 호수공원까지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근육을 이완시켜 가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고 있어서 놀랐다. 혼자 뭘 한다는 건 참 고민이 많다. 어디서부터 뛸 건가? 어느 쪽으로 뛸 건가? 언제까지 몸을 풀고 시작할 건가? 등등의 고민을 순간순간 결정해 가며 드디어 출발한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반시계 방향으로 출발했고, 예전에 깨우친 대로 2킬로미터 까지는 워밍업으로 적절한 페이스를 찾을 수 있도록 천천히 시작하고, 조금씩 속도를 변화시켜 보기로 했다.
드디어 머릿속에만 담아뒀던 아침 달리기를 하는구나! 하며 벅찬 감동에 웃음 짓고, 간간이 마주하는 이웃 마라토너에게 웃음을 건네며 고요한 호수를 감싸 안은 둘레길을 뛴다. 점점 따뜻해지는 듯한 기운을 받아서 몸은 활력을 더해가고, 예전대비 체중이 줄어든 탓인지 1킬로미터를 넘어서는데도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 정도 지나니 주변을 보기보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예전에 뛸 때 어떻게 했었지? 발바닥은 어디부터 땅을 딛어야 하는가? 얼마나 빨리 뛰어야 하는가? 팔은 이 정도면 괜찮은가?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들었고, 하나 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새롭게 느끼며 알아가는 것도 생긴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보니 다들 반대로 뛰는 거 같다. 같은 방향으로 뛰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보고, 자꾸만 마주 뛰어오는 분들과 만난다. 나만 반시계방향으로 뛰는가 생각해서 두 번째 바퀴는 시계 방향으로 뛰었다. 근데 이게 뭐지? 이번에도 마주하는 쪽으로 뛰는 사람만 만난다. 저분들도 나처럼 생각해서 방향을 바꿨나 보다 했는데, 페이스를 찾아서 점점 속도를 내어보니 같은 방향으로 뛰는 사람들을 지나게 된다. 아! 뛰는 속도가 비슷하니 같은 방향으로 뛰는 분들은 계속 일정 간격이 유지되어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네...ㅎㅎ
페이스를 찾느라 속도를 늦췄다 빨리했다 바꿔보면서 상체를 어느 정도 기울이고, 발을 딛는다는 생각보다는 무릎을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하면 저절로 일정 보폭이 나오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기울이면 좋고 어느 정도 보폭이면 안정될까 궁금해서 도식화해 보기로 했고, 달리기 끝내고 정리해 보니 그림과 같다.
176cm키와 얼굴 길이 30cm를 기준하고, 체중을 잘 받쳐주기 위해 무게중심 앞까지 내디뎌 주는 게 좋다고 가정하면 최소 54cm 이상 발을 내디뎌 줘야 하는 계산이 나왔다.내가 보통 걷는 보폭이 70cm이니까 감안하면 60~70cm 정도가 안정된 보푹일 거 같다. 그렇다면 몇 킬로미터를 얼마 만에 뛸 것인지 꼭 시계가 없어도 될 거 같다. 보통 숫자를 헤아리며 분, 초를 가늠할 수 있으니 발걸음을 헤아리거나 호흡 간격 등으로 보폭을 초당 몇 회 정도 간격으로 딛는지 체크하면서 뛰면 10킬로미터 달리기 소요 시간을 산출할 수 있겠다.
((10km*1000) m/0.6m) 걸음*초/3.5걸음)/60=92.6분
초당 3.5걸음으로 계산해 보니 79.4분이고, 좀더 빨리 네 걸음으로 계산하면 69.4분이다. 7키로 정도를 한번 뛰어보니 제 체력에는 10킬로미터를 한 시간 10분 정도로 뛰면 적당할 거 같으니 다음엔 초당 4걸음 감각으로 뛰어봐야겠다.
오랜만에 한번 뛰어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조금 숙달되면 스스로 계측하며 뛸 수 있을 거 같다. 내일부터 이 방법을 적용해서 뛰어볼 생각을 하니 얼른 뛰고 싶어 진다. 지난번 세 바퀴 돌면서 여기서 멈출까 말까? 고민을 무지했었는데, 계산을 통해 이렇게 기대감에 부풀었으니 실천 의욕도 높이고 감각도 키우는 효과도 있을 거 같아서 좋다. 앞으로 더 이론적으로 접근을 병행해서 에너지 소모량이나, 오르막 내리막에서 각도가 바뀌는 경우도 감안해 보는 작업도 해야겠다. 곧 이게 가능한지 직접 뛰어보고 2탄을 적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