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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로 Jul 21. 2023

앙숙, 조바심과 기다림

고구마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3분을 데운다. 이슬까지 맺히게 했던 냉기가 사라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가 되었다. 껍질을 벗기려는데 너무 뜨겁다. 갓 삶아낸 것처럼 뜨거워져서 군침 가득한 입을 달래려고 서둘러 먹기는 불가한 상태다. 머리로는 '조금 이따 먹어야겠다.' 하며 기다림을 생각하지만 손은 벌써 껍질을 잡았다 놨다 조바심 내며 벗겨내고, 결국 손은 뜨거움에 화상을 입는다. 고구마가 먹기 좋게 식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빨리 식기를 재촉하는 조바심 사이에 나는 늘 방황한다. 간식 먹는데도 이럴진대 세상 많은 일에 조바심과 기다림의 대치상황은 허다한 거지!


한국철도공사에서 KTX는 5분 그 외 열차는 10분 이상 지연되는 것을 지연으로 간주한다. 일본의 철도회사는 30초만 늦어도 지연으로 간주하여 안내방송을 보낸다고 한다. 반면 유럽은 지연이 상시로 있고 이태리의 경우는 1~2일 지연되는 경우까지 있어서 유학생이 한국 들어와서 KTX 10분 지연되는 사례를 보고 조바심 하나 없이 시간 잘 지킨다고 한단다. 이렇듯 조바심과 기다림은 서로 다른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 지만 한 상황을 두고 느낌이 나라마다 문화마다 개인마다 가지가지다.


이번에 해외 유수의 자동차 회사로 부터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 수주를 많이 했다고 재직 중인 후배 직원들께 얘기 들었다. 그중에는 세계최초의 신기술 제품도 있다. 감격의 눈물이 벌컥 쏟아지고 저절로 주먹 불끈 쥐고 앗싸! 를 외쳐본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다고 생각하는 조바심인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다림인지 모를 시간이 많다. 시장상황이 요구하는 시점만 기준한다면 조바심 내는 게 맞는 거 고, 가진 실력이나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시간을 기준하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획부서나 재경팀 그리고 분들이 결과를 재촉하는 조바심으로 호되게 야단을 면 그렇게 생각하고 반성하다가... 돌아 앉아 담당자들과 어떻게 빨리, 적은 비용을 들여서 개발할까 의논을 해보면 기다림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시간과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해서 어렵게 어렵게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신제품이 수주되어 양산개발까지 이어지면 함께 고생한 분들과 눈물 쏟고, 술잔 들어 올리고 부딪히며 축하한다를 외치며 어깨동무와 껴안기를 반복하며 그간의 고난을 씻어냈었다.

어느 분이 이번 수주가  딸아이 곱게 키워서 시집보낼 날 잡은 거와 다를 바 없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스타트업의 성공 비율이 1% 미만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신기술 개발 성공이 어쩌면 확률적으로는 시집보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거 같다. 이번 성과를 거울삼아 지위고하  소속을 막론하고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림으로 신기술 개발을 독려하면 좋겠다.


이젠 퇴직을 해서 권한도 없고, 가진 돈도 없어서 그저 말로만 축하하고, 그간 고생했다고 격려하고서는 집에 돌아와서 혼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마나님 붙잡고 힘들었 과거사를 쏟아놓고 보니 예전처럼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게 너무너무 아쉽다.

서울대학교공과대학 교수님들께서 공동저술한 "축적의 시간" 책에서 얘기하는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을 키우고, 이정동교수께서 얘기하는 "창조적 축적"을 지향하고, 후반부에서 권고하는 고정관념 중 아래  3가지를 깨부수어 차근차근 직접 경험을 축적하는 기다림이 미학이 되는 연구소가 많아지길 기원한다.


(고정관념 1) 생산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 한다.

  >>생산현장 없이는 질 좋은 고용현장을 창출할 방법이 없고, 생산을 지원하는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성장도 없고, 경험지식도 없다

(고정관념 2) 첨단 특허 한 건, 세계적 논문 한편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

  >>아이디어를 Scale-up 하여 실용화할 수 있는 역량이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 고도의 경험지식 영역이므로 아이디어만 있고 스케일업 역량이 없으면 다른 나라가 혜택을 본다

(고정관념 3) 필요한 경험과 지식은 살 수 있다.

  >>고급지식일수록 교과서, 매뉴얼, 논문 혹은 특허로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은 머릿속 혹은 일하는 방식 등에 체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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