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달리기에서 여생의 목표를 세웠다.
책이 출판된 지 어언 24일이 지난 어제 출간기념 미팅을 했다. 이탈리아에 계시는 에레님을 빼고 작가님 포함 총 5명이 화상으로 지나온 얘기를 나눴다. 말이나 글로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는 게 이렇게 부족하고 어려운지 몰랐다. 그래서 출간을 하고 그동안 주위 분들과 함께한 귀한 시간에 대한 감동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으로 혼자 진한 감동의 울음을 쏟았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박민하작가님과 부족함을 채워줬던 공동출판 작가 네 분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라는 갈증 때문이다.
얘기 중에 브런치 스토리에 적고 있는 달리기 얘기도 잠깐 해서 아침에 눈을 뜨니 달리고 싶은 맘이 절로 일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추천해 주신 절대고독님 덕분에 2번째 달리기 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며칠 만에 3번째 달리기를 위해 소란하지 않게 집을 나섰다.
훈훈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건 여전히 여름이 건재함을 과시하는 거 같고, 몇 명이 걷거나 뛰고 있는 호수공원의 전경이 부산한 주말을 지나 평일 아침에 여유를 보여준다. 가수 버블디아가 부르는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 주니퍼” 한곡을 들으면서 준비운동을 한다. 이런 모습은 별생각 없이 뛰었던 앞의 두 번의 달리기보다 많이 발전한 준비된 러너의 모습이다...ㅎㅎ. 오늘은 8킬로미터 달리고, 저번보다 거리가 늘었지만 빠르게 뛰는 게 목표다. 10킬로미터를 1시간에 뛰려면 좀 더 체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폰에 달리기 앱을 10킬로미터 목표로 세팅하고 시작을 누르니 3초 알림이 나온다. 삐~ 삐~ 삐~ 소리에 시작 시간을 놓칠세라 겁 없이 바로 달려간다. 처음 2킬로미터는 원래 페이스를 찾아가며 무리하지 않아야 하는데 삐삐삐 소리에 그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결국 한 바퀴 돌고 나니 죽을 거처럼 숨을 헐떡인다. 다시 걸음을 헤아리고, 가슴 펴기도 하고, 그동안 터득한 달리기 기술들을 떠올리며 조금씩 안정된 마라토너의 모습을 찾아간다. 차분해진 달리기는 의외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오롯이 혼자 발을 번갈아 내딛기를 반복하기에 최면 걸 때 눈앞에 흔들리는 진자처럼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인가? 주위에 뛰고 있는 분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저분은 나보다 훨씬 연세가 있어 보이는데 이른 아침에 뛰고 있구나! 휙- 하고 지나는 젊은 러너를 따라가다가 몸 상할까 봐 걱정하며 이내 속도를 줄이고서 ’ 젊음이 좋다 ‘ 하며 자위한다. 계속 옆을 지나쳐야 하는 걷는 분들을 보니 참 다양하다. 어린애 손을 잡고 가는 분도 있고, 콩깍지가 커다랗게 씌워진 게 보이는 젊은 부부도 있고, ‘정으로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듯한 한 손 꼭 잡고 걷는 중년 부부도 있다. 혼자 절름거리며 걸으시는 노인과 지팡이에 의지해서 아주 느리게 운동하시는 분도 계시고, 햇빛을 가리느라 머리와 얼굴에 천으로 감싸고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써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젊은이인지 노인인지? 알 수 없는 분들도 많다. 보호할 뽀얀 피부를 가진 분일 거로 생각된다. 이미 검게 그을리고 울긋불긋 팔뚝을 감싸 안은 검버섯 등 늙어버린 피부라서 별로 가꿀 생각 없는 나는 부러울 뿐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문득 걷는 거와 뛰는 거의 차이가 뭘까? 생각이 들었다. 뛸 체력이 안되어 걷는 것일까? 나이 들어도 계속 걸으면 수명기간 동안 걸을 수 있을까?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는데 100살까지 걸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한순간 빠져드는 생각의 고리에 얽혀 헤어날 줄 모르고 끝없이 따라가 본다. 저분은 언제부터 걸었을까? 걸을 수밖에 없는 체력이 되었을 때 유지하려고 시작했을까? 아님 젊어서부터 걸었기에 60이 되어 보이는 지금 나이에도 걸을 수 있는 것일까? 저 젊은이는 왜 뛰지 않고 걸을까? 남모를 속사정이 있어서 뛸 수 없는 것일까? 아님 인터넷을 뒤덮고 있는 유산소 운동의 장점을 염두에 두고 효과를 기대하며 걷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고,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 같이 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널브러진 생각들을 주워 모으고, 재배열하고 줄 맞춰 세우고...ㅋㅋ. 그러면서 벌써 세 바퀴째 돌로 있다. 달리기는 생각하기 좋은 운동인 게 분명하다. 마지막 바퀴이기 때문인지 아님 그간의 고민이 성과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로 생각이 정리되고 있다.
먼저 뛰어야겠다. 점점 체력이 약화될 것 이기에 지금 뛰어야 나중에 걷기라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근거는 없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차근차근 근거를 찾아볼 생각이다. 다음으로는 트레이너들이 마지막 한 번만 더! 하듯이 강화운동을 해야겠다. 죽을 거 같을 때 한번 더해야 체력이 증강한다. 100세에 걷고 있으려면 지금부터 육체적으로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접어야겠다. 즉 육체적 노인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그건 준비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자연현상이다. 이를 거스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부관리 잘하고 몸매관리 잘한 김혜수 씨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밀수 영화에 나오는 그분을 누가 52세로 볼 것이며, 미션임파서블 7에 나오는 톰크루즈가 62년생인걸 알고 있을까? 다들 자연을 거슬러 피부와 몸매 그리고 체력을 유지하는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에 맞는 적절한 운동보다는 육체적 노인을 거스르는 조금 무리한 운동을 지속하자. 반면에 마지막으로 정신적 노인을 준비하자. 지혜롭고 노련한 처세를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사고, 인생사 새옹지마를 알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 일희일비하지 않는 거목 같은 모습 그런 정신적 노인을 준비하자.
뜀박질하는 인문학자가 되려나? 생각하며 8킬로미터를 완주하고, 숨 고르기와 함께 여태껏 생각들을 갈무리한다. 목표 8킬로미터를 평균페이스 6분 57초에 뛰었다. 지난번 7킬로미터를 뛸 때는 7분 2초였으니까 5초 향상되어 목표 달성이다. 평균심박수가 지난번 177 bpm이었는데 이번에는 157 bpm인걸 보니 체력도 좋아진 거 같다. 달리는 기술 측면에서도 힘들다고 자세를 세우면 속도가 엄청 감소하는 걸 알았다. 그래서 참고 꾸준히 앞으로 기울인 자세를 유지하고, 발바닥을 땅에 최대한 오래 딛고, 박차고 오르듯이 앞으로 밀면 속도, 보폭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생각과 체력강화의 일거양득 효과가 있는 달리기를 꾸준히 해서 숨을 헐떡이며 뛰는 노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