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서인지 아침 공기가 숨쉬기 편해졌다. 더위를 핑계로 미루고 있던 달리기 이론을 실습해 보자고 맘먹고 곧 땀에 범벅이 될 모습이지만 나름 머리부터 다듬어 본다. 달리기는 뭐니 뭐니 해도 운동화로부터 시작하니 끈을 이리저리 만지작 거려서 적절한 텐션이 유지되도록 옭아매고 대문을 열었더니 벌써 후덥지근해진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아직 뛰기에는 이른 시기인가?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밖을 향해 내달음질 친다.
먼저 지난번 뛰고 나서 생각한 달리기 이론을 머릿속 저편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어떻게 뛰기로 했는지? 뛰면서 뭘 생각해야 하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뛰기 직전까지 정리한 거로는 다음 세 가지는 꼭 해야 한다.
첫 번째로 자세 유지다. 몸을 앞으로 30도 정도 기울인다.
두 번째는 보폭을 60~70cm 이상으로 유지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시간과 발걸음 수를 카운팅 한다.
위 세 가지를 잘 유지했다면 얼마만 한 거리를 얼마 만에 뛰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뛰면서 헤아려보니 100초에 100걸음 뛰었다. 이걸 기준으로 지난번 도식화한 수식을 이용해서 환산하면 다음과 같이 7km를 얼마 만에 뛰었는지 알 수 있다.
[계산 1] 100 발걸음*((65cm/100cm) m/1000) km=0.065km
[계산 2] ((7km/0.065km)*100초)/60초=179분(약 세 시간)
그런데 핸드폰으로 계측한 실제 시간과 비교하니 말도 안 되는 수치다. 폰 기록상으로는 7킬로미터를 49분 55초에 뛰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확인을 해보니 보폭에 오류가 있었다. 걸을 때는 한걸음이 평균 64cm이지만 뛸 때는 1 ~1.2m 정도였다. 보폭을 100cm로 보정해서 계산하면 117분이다. 실제는 50분 걸렸는데 어디서 아직도 20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계측한 결과를 다시 꼼꼼히 확인해 보니 분당 발걸음 수인 케이던스가 평균 165 spm이다. 즉 초당 2.75걸음 속도로 뛰었다는 것이다. 직접 헤아릴 때는 백 걸음이 백초였으니까 초당 한걸음이었는데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생각해 보니 걸음 수를 헤아리는 거와 초를 헤아리는 걸 분리하지 못하고 동일시했기 때문인 거 같다. 측정된 케이던스 기준으로는 백초에 275걸음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42분 나온다. 실제 계측한 50분과 8분 정도 오차가 발생했으나 군데군데 힘들었던걸 고려하면 8분 정도는 충분히 계산한 거 대비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정리하면 뛸 때 평균 보폭은 약 1미터이다. 그리고 평균 초당 2.75 걸음 뛴다. 이 정도 달리면 10킬로미터를 1시간 10분 정도 뛸 것이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겠지만 이번에 측정장비 없이 감으로 자기 페이스를 관리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보니 가능성이 충분히 보였고, 그 외에도 좋은 점이 많아서 정리해 본다.
먼저 지난번에 혼자 뛰니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매 순간 여기서 멈출까? 더 뛸까? 고민이 되었고, 고민은 의욕저하와 이어졌는데 그걸 극복해 내야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 발자국을 몇 초에 뛰었는지 셈하느라 그런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좋았다. 오히려 이번에는 좀 더 빨리해 볼까? 이번 100미터는 너무 오래 걸렸는데... 하며 의욕이 고취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100미터마다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곳을 달리다 보니 즉각 즉각 속도와 보폭, 자세 변화를 인식하고, 변화시켰을 때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오르막 때문에 보폭이 많이 줄었으니 다음번에는 좀 더 성큼성큼 뛰어보자.... 생각하면 100미터를 116걸음으로 뛰었다가 바로 다음 100미터는 97걸음으로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페이스가 처지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스스로 자세를 살핌으로써 관절이나 특정 부위의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달리기 자세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익혔는데 정말 좋은 코치였다.
특히 앞으로 30도 정도 기울여 뛰기로 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자꾸 연습하니 후반부에는 고개를 숙여 내려봤을 때 가슴이 내딛는 발 끝 정도로 나와 있는지? 시선을 꽃꽂이 세우기보다는 서너 발자국 앞을 봐서 몸 기울기와 일직선을 이루는가? 등을 관찰하여 자세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발목이 꺾여있는 걸 느끼는 등 자세에 세심히 신경 쓰면 잡념도 사라지고 바른 자세를 지속할 수 있다. 기울어진 자세는 속도와 효율을 높여줘서 뛰고 나면 성취감도 높아진다.
자세는 분명 과학이다. 어느 shorts를 보니 아래와 같은 영상을 보여주며 100m 달리기 출발 순간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렇게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효율적인 자세를 잡고, 그렇게 체득하고 자신을 관찰하면서 뛰어 한 시간 정도 머리를 비우는 리플래쉬 효과를 얻으면 최고의 달리기인 거 같다. 다음번에는 좀 더 변화를 가져가며 가설의 정확도를 높이고, 자꾸 감각을 통한 속도와 거리 그리고 시간을 가늠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