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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인간 Mar 07. 2020

오늘은 전단지를 생각한 하루

2020년 3월 7일 


얼마 전 결혼했다. 

그래서 친정과 집을 오가며 반찬 나르기에 힘쓰고 있다. 살기 위해. 


바리바리 반찬통을 들고 지하철을 탔다.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앉아 있었다. 


저 멀리 여닫이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남색 조끼를 걸치고, 등산용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의 등장. 

아주머니는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좌석 위에 붙은 광고판에 전단지를 붙이며 다가왔다. 


글쎄, 너무 익숙한 전단지 

당일 대출도 가능하다는 대출 전단지다. 

아주머니는 광고판 위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단지를 붙이고, 다음 열차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두 정거장쯤 지나자 내가 타고 있던 열차칸으로 되돌아와 노약자석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었다. 


다음 역에 내리려고 반찬통을 주섬주섬 챙겨 출입문 가까이 서 있었다. 

그 때, 젊은 청년이 저 멀리서 광고판에 붙은 전단지를 

하나씩, 모조리 떼어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 근처에 섰다. 


전단지를 붙인 사람과 전단지를 떼는 사람.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신경 쓰였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청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거 왜 붙이는 줄 알아요? 다 먹고 살려고.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 어쩐지 그 사람 속사정은 모르잖아요."


그 때 지하철은 바깥에서 어둠이 깔린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볕이 사라진 지하철 유리창에 청년과 아주머니의 얼굴이 비쳤다. 


고작 한 정거장 가는 길이었지만, 

붙이는 자와 떼려는 자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단지는 일상이 되었다. 

지하철 출입구마다 건널목마다 

아주머니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전단지를 내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라며 책임감을 부여하기,

'한 번만'이라며 간청하기,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전단지 보여주며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 

물티슈를 끼워넣어 유인하기,

에너지를 비축하듯 무심하게 내밀기, 

아니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내 손에 전단지를 밀어넣기 등. 


넘쳐나는 전단지와 광고 세례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먹고사니즘'을 생각하게 된다.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 

그러나 누군가를 유인하는 대출 광고를 붙이는 일.

아주머니는 붙이고, 어떤 사람은 떼고, 지하철 청소하는 분들도 떼어내고. 


지하철의 첫 차는 그렇게 출발하고, 막차도 그렇게 도착한다.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사람들. 

먹고사는 게 이렇게 안간힘을 써야한다는 게 계속 돌고 도는 순환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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