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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r 18. 2024

나의 아버지 추도사


주우준 베드로, 

저희 아버지는 평생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선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인하여 어머니와 누나, 동생들과 헤어져 남으로 내려오신 후 녹록지 않았던 피난 생활과 북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아버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강건하게 나아가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와 만나 가정을 이루신 후 저희 3남매를 낳아 기르시면서 성실함이 무엇인지, 남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훌륭하신 아버지셨습니다. 저를 비롯한 저희 남매에게는 참으로 복되게도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에서 신나게 놀던 즐거운 기억에서부터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이탈리아, 스페인 도보 여행까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추억들은 앞으로 저희 3남매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힘드셨던 상황에서도 저희를 위해 긍정적으로 밝게 생활해 주셨던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아버지 옆에서 힘이 되어주셨던 성당 친구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동생들로부터 사랑받는 오빠,

자녀와 사위로부터 사랑받는 아빠,

손자 손녀로부터 사랑받는 할아버지,

친구들로 부터 사랑받는,

그리고 이 모든 사람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이제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세요. 아빠, 사랑해요! 

여기까지는 언니가 하고 싶은 말이고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 할께요. 아빠가 싫어 하실 거에요. 남들 앞에서 푼수 같이 행동한다고…

아빠가 그러셨어요. 누군가에게 말을 할때 옳은 말인가? 그 말이 옳으면서 필요한 말인가? 마지막으로 그 말이 옳으면서 필요하면서 친절한 말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걸 본보기로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아빠는 통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말씀을 거의 안하셨죠. 

그리고 아빠로부터 한평생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단 “공부해라.”,  “참아라.” 라는 말 빼 놓고요. 

그리고 아빠는 평생을 살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느 한쪽에 기운 답을 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항상 중립이셨죠. 어쩔 땐 화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빠와 둘이 있을 때 아빠한테 물어봤어요. 가시기 전에 이것만은 꼭 대답하고 가셔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나만 아는 비밀로 하겠다. 

“언니가 젤 좋아? 남동생이 젤 좋아? 내가 제일 좋아? 대답해!!!! 빨리 대답해!!!!” 

편안히 누워 계셨던 아빠가 ‘너, 너 끝까지 날 괴롭히는구나!’라는 느낌으로 갑자기 인상을 팍 쓰시고 기침을 마구 하시며 손을 내 젖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아빠가 벌떡 일어나시는 줄 알았어요.

“내가 젤 좋다고 그냥 얘기해. 정미가 제일 좋다고…. 그냥 그렇다고 말만 해” 

대답을 안하시는 거에요. 

그러다 한참 후에 “다 좋아.”라고 들릴 듯 말듯 한마디 하시고는 어떠한 요구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입을 딱 다무시는 거에요. 

“아빠! 저 기다릴게요. 꿈에서라도 꼭 나타나셔서 말씀하세요. 

내가 다 알아 아빠의 진심을, 

누구보다 둘째 정미가 더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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