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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Feb 28. 2024

K팀장의 검정 카니발을 타고

카니발 속 영글어진 추억들

22년 가을, 광주 상무지구의 어느 술집이었다. 기업 대표님들을 모시고 서울에서 광주로 비즈니스 교류회를 온 우리는 이미 술에 취한 채 3차를 즐기고 있었다. 비트감이 담긴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쪽 벽면은 거울처럼 되어 있어 이상하게 넓어 보였던 술집. 주변엔 2~30대의 젊은이들만 있었던 그 술집에서 나와 K팀장님은 세 분의 기업 대표님을 모시고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생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이 아저씨 어딘가 이상하다. 내가 아는 팀장님이 아니다. 그는 술에 한껏 취하다 못해 혼자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이미 만취한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팀장님을 버리고 홀로 비실비실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아마 새벽 내내 신이 난 상태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했을 것이다.


반짝거리는 머리와 검은색 반무테 안경을 쓴 까칠한 아저씨인 K팀장님과 보낸 시간은 겨우 1년 남짓이다. 그와 상사-부하 직원으로 함께 하게 된 건 내가 사직서를 회수하고 인사이동을 요청한 이후였다. 우리 팀은 어느 정부 부처의 기업 육성 사업을 담당했는데, 팀장을 포함해서 겨우 3명밖에 안 되는 위태로운 삼각형 구조였다. 그해 나는 이 까칠한 아저씨의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일을 잘하려면 완벽한 삼각형의 형태를 유지해야 했으니까.


우리 팀은 서울시 소재의 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기업의 현장을 방문할 일이 많았다. 당시 조직에서 외근이 가장 많은 팀이었고, 외근을 갈 일이 생기면 K팀장님의 검정 카니발을 타곤 했다. 나는 여태껏 그가 운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둘이나 되는 팀원 중에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K팀장님은 늘 팀원들의 기사 노릇을 해야 했다. 게다가 부서 단위의 자유 시간이 있는 날이면 그는 카니발 안에 여러 명의 동료들을 구겨(?) 넣고 무거운 카니발을 몰았다.


검정 카니발은 서울뿐 아니라 경주와 포항으로도 향했다. 22년 여름, 우리 팀은 경주로 출장을 갔는데, 하루 먼저 다른 팀원과 내려와 있던 K팀장님은 다음 날 후발대로 내려온 나와 기업 대표님, 여행 차 합류한 전 동료를 태우고 경주 황리단길로 향했다. 박람회와 우수기업 성과발표회, 시상식이 있던 그날은 오전부터 숨 막히는 더위와 습기가 올라왔다. 시상식이 끝날 무렵에는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는데, K팀장님의 카니발 안에서 젖은 발을 말리며 타닥타닥 빗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출장 일정 끝나고 자유시간 시작이다!' 출장 일정을 마친 이후에도 카니발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포항의 영일대와 화진마을 거쳐 문경새재에도 머물렀다. 그해 여름, K팀장님의 카니발은 거침없이 전국을 오갔다.


차 안은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다. 외근을 가거나 팀 단위 자유시간을 즐기러 가는 길엔 K팀장님의 성토시간이 시작됐다. 그는 자주 조직의 일 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간 회의 분위기, 상급자의 의사 결정 방식, 주무 부서의 태도까지. K팀장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동료들은 이런 팀장님의 성향을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했으나, 당시 팀장님처럼 조직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신나게 K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쳤다. 사무실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갔던 검정 카니발은 우리 팀의 프라이빗 카페였다.


그 해 검정 카니발을 타고 작은 여행을 자주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가장 강력한 추억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광주 출장일 것이다. 나는 K팀장님과 두 번의 광주 출장을 함께 했다. 한 번은 ktx를 타고 비즈니스 교류회를 준비하기 위해 사전 답사를 했다. 또 한 번은 은빛 리무진에 기업 대표님들을 모시고 1박 2일 여정을 함께했다. 광주로 가는 길엔 검정 리무진은 없었다. 하지만 K팀장님은 있었고 그 해 행복하다고 느꼈던 여정엔 그가 늘 함께했다.


그 해 나는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두려웠다. 행복은 늘 잠깐 다녀왔다가 언제고 나를 떠날 것이고, 나는 상실감을 느낄 게 분명했다. 결국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고질병이다. 나는 K팀장님과 1년을 보내며 깨달았다. 행복은 잠깐 왔다가지만 자주 찾아올 수 있다고. 삶은 여전히 슬프더라도 우린 문득문득 행복할 수 있다고. 슬픔이 절대 나를 찾아오는 행복들을 내쫓을 수 없다고. 감정들은 서로 상쇄돼서 0이 되지는 않는다고. 유독 슬펐던 22년 가을, K팀장님의 카니발을 수차례 타고 다니며 깨달은 사실이다.


그는 지금도 커다란 검정 카니발을 끌고 이곳저곳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올드 팝송을 틀어 놓고 혼자서 출퇴근길의 낭만을 만끽하거나 두 아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다. 언제 또 동료들을 카니발에 가득 채운 채 북한산과 은평한옥마을을 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영글어진 추억들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많이 행복하고, 많이 두렵다.


22년 가을, 광주 동명동의 출장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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