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아 Feb 26. 2017

인간은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는가

BGM : 장범준 - 그녀가 곁에 없다면

#1

한남동에서 서촌으로 넘어가는 길. 그리고 서촌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서울을 한 바퀴 빙 돌며, 우연찮게 추억의 장소들을 지나쳤다. 첫사랑과의 첫 데이트 날, 안국역 출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의 모습. 어느 더운 여름날 커다란 호가든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혜화동 어느 노천 카페의 장면과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의 차림새. 쓰고 있던 헤드폰을 건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를 틀어주며 노래를 듣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누군가의 표정이 떠올랐다. 기분이 묘했다. 알 수 없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사랑도 그렇겠지. 언젠가 돌아봤을 때, 추억이 됐을 때 더 애틋하겠지.


추억이 사랑'만큼' 소중하다지만, 어떨때는 일상이 돼버린 사랑보다 소중하게 느겨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 참 어리석다. 지금의 소중한 시간또한 언젠가 돌아보면 추억이 되어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욱 애잔한 마음을 들게 만들텐데, 그러니 지금 이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에 집중할 것이지 쓸데없이 미래의 애잔함을 걱정하고, 또 이미 지나간 시절의 애잔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종종 반복되는 이 어리석은 감정 앞에, 과연 인간은, 아니 나라는 사람은 과연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에 기대어 살고, 어쩌면 평생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현재를 누리는 능력을 영영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


#2

어제 새벽, 나이듦과 그 과정에 잃어버리는 것,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오늘은 젊음과 청춘을 주제로하는 사진전을 보고 왔다.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어제 본 영화가 준 깨달음과 '새것도 결국은 헌것이 된다'는 <우리는 사랑일까> 영화 속 한 마디가 떠오르며 이 젊음 또한 언젠가 결국 그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겠지라고 허무주의에 빠졌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더 나은 답을 찾고자 하는 욕심이다.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영화를 보고 고뇌하는 것이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허무주의에 푹빠져 고통의 순간이 왔을 때 '그래 내 결국 이럴줄 알았어. 인생이란 원래 이런거지'라며 마음의 준비를 해두려는 것은 아닌가. 이것 또한 나의 또 다른 방어기제일까.


#3

매사에 욕심을 버리자. 내가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 인간 관계도, 일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즐겁게, 즐기며 살아보자는 게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테까


조급해말고, 기다리자. 어떤 것이 해답이 될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연애 습관과 자기 방어 기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