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안녕, 보스턴. 안녕, 샌프란
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날이었다. 오후 네 시쯤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7시간을 날아 미국의 서부에 닿는 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보스턴을 한 번 더 걸어보고 싶어서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는 호텔 라운지에 맡긴 채 거리로 나섰다.
보스턴 커먼의 호수는 우리가 도착했던 날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스케이트를 타던 사람들 대신, 꽁꽁 얼은 빙판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한 번 해봤다고, 다시 호수 쪽으로 내려가 겁 없이 얼음의 단단함을 발로 확인했다. “진짜 꽝꽝 얼었네.”
그다음은 사진을 찍으러 예쁜 거리로 향했다. 눈이 얇게 깔린 바닥 덕분에 풍경은 더 영화 같았고, 우리 말고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롱패딩을 벗어 동생에게 맡겼다. 잠깐이라도 ‘여행자’가 아닌 ‘그 거리의 사람’처럼 섰다. 원하는 구도를 말하며 몇 번이나 다시 찍었다. 동생은 어느새 사진 고수가 되어 있었다. “오케이, 이번엔 괜찮다.” 우리가 서로를 오래 찍어준 여행의 결과였다.
그리고 우리는 곧 서부로 날아간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패딩을 캐리어에 넣고 당분간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롱패딩은 몸을 둔하게 만들고, 실내에 들어가면 어느새 짐이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봄가을 같은 날씨라고 했다. 그 말 하나가 여행의 기분을 바꿔놓았다.
공항으로 가기 전, 동부에서의 마지막 한 끼로 햄버거 Chik-fil-A를 먹었다. 뒤늦게 “여태 이걸 왜 안 먹었지?” 싶어서 급하게 찾아갔다. 주문 방식이 특이했다. 직원이 줄을 세우고, 차례대로 태블릿으로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치킨버거와 와플 모양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소중히 들고서 2층에 올라가 앉았다. 버거 소스는 케첩과 마요네즈 사이 어딘가의 색이었는데, 달콤 새콤한 맛이 맛있었다. “이 소스는 따로 팔 만하네.” 동생이 말했다. 실제로 이 특제소스는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었다. Chik-fil-A의 바삭한 치킨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동부에 대한 미련을 소스를 머금은 치킨버거 한 입으러 정리했다.
호텔로 돌아와 캐리어를 찾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는 늘 하던 일이 반복됐다. 붙이는 캐리어의 무게가 간당간당해서 짐을 빼고 넣고, 다시 올려 재고, 또 빼고 넣었다. 한 달 가까운 여행을 성인 둘이 큰 캐리어 하나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버틴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웃기고 조금 대단하다. 나는 뉴욕에서 언니 편으로 짐을 많이 보냈고,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겨뒀다. 오히려 동생 짐이 더 많았다. 나중엔 안 입는 옷이 부피를 차지해 동생에게 안 입는 옷을 왜 들고 왔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제트블루 비행기를 타고 이륙했다. 창밖은 노을로 물들었다. 동생과의 여행에서 벌써 네 번째 비행기였다. 비행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진다는 건 여행이 중반을 넘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좋았다. 검색도 못 하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잠시 관광으로부터 해방됐다. 몸을 쉬게 할 수 있었고, 그게 다음 날을 버티게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린 뒤, 우리는 우버를 불러 숙소로 이동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숙소까지는 25분 정도. 어둑한 길을 달리는데, 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차가 올라갔다 내려가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 도시 뭐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여태 다닌 도시들과 완전히 다른 리듬이었다. 나는 계속 휴대폰 속 지도 화면을 확인했다. 이 길이 맞는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바깥은 어두웠고 건물은 생각보다 외곽에 있는 느낌이었다. 겉모습도 조금 허름해 보였다. 우리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간이라 문은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24시간 근무 중인 직원이 문을 열어줬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컴퓨터를 오래 들여다봤다. 다른 직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뭔가를 물어보고 돌아왔다. “잠시만요.” 시간이 흐르자 내 불안도 함께 커졌다. 처음엔 앉아서 기다렸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불안한 사람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이나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그리고 직원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지금 예약하신 투베드 룸이 없어요. 원베드 룸만 남아 있습니다.”
순간 귀가 멍해졌다. 우리는 굉장히 심각했다. 우리는 편하게 여행하려고 일부러 침대가 두 개인 방을 예약했다. 비용도 더 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저희는 한 침대는 못 씁니다. 분명히 투베드 룸을 예약했어요. 그리고 동생이 덩치가 있어서 같이 한 침대를 쓸 수 없습니다.” 동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하게 말하지 않으면, 쉽게 밀려나는 상황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도시에서 배웠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은 그들에게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굉장히 난처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다시 안쪽에서 한참을 의논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원베드 룸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다”라고 재차 말했다. 대신 “옆 건물에 별장 같은 공간이 있는데, 거긴 사용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장서서 그 별장을 보여주는데,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관리인도 없고, 우리 둘만 덩그러니 머무는 공간. 창문은 크고, 안이 훤히 보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심하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었다. 안전해 보이지 않은 이곳에서 ‘우리가 둘이 생활하는 게 맞나?’라는 말이 목 안쪽에서 계속 맴돌았다.
너무나도 큰 아량을 베풀어주고 있다는 뉘앙스를 취하는 그 직원을 보고서는 우리가 배려받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들은 현재로서 선택지가 두 개뿐이라고 했다. 원베드 혹은 별장.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별장을 택했다. 적어도 각자 침대가 있었으니까. 주방, 복도, 샤워공간 등은 컸지만 잠자는 방은 2층침대 구조로 작았고, 아래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 놓을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 직원들 말에 '오히려 잘된 건가'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와 동생은 기존 투 베드 룸을 이용하고 싶었다. 관리인과 많은 투숙객들이 함께 있어 더 안전하고, 그리고 정수기와 구정물이 아닌 깨끗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는 건물. 우선, 지금 당장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와 동생은 캐리어를 끌고 별장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엄마와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둘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안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 위험해 보이니까 다시 프런트에 가서, 내일이라도 투베드 룸으로 방을 바꿔달라고 확실히 말해.”
우리는 다시 프런트로 가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우선 오늘은 여기서 지내지만, 내일은 저기 별장에서 못 지낼 것 같다. 저곳에서 지내는 게 너무 무섭다. 내일 어떻게든 우리를 투베드 방으로 옮겨달라. 투베드 방이 정 없으면 그냥 원베드로 쓰겠다. 우선 저곳에서는 우리가 잠잘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직원은 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은 “담당자가 내일 출근하면 도와드릴 거예요.” 나는 물었다. “어떻게 도와주나요? 투베드 방으로 옮겨 주나요?” 직원도 “모른다”라고 했다. “내일 담당자가 와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국의 소통방식은 정말 답답하다. 본인의 역할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손님이 불편한 상황을 겪더라도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를 다할 뿐이며, 그 이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미치겠다.
모른다는 답을 받는다는 건 불안의 형태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우리는 투베드룸을 써야 하고, 우선 별장에서는 못 지낼 것 같고, 내일 투베드룸이 없으면 우리는 다른 숙소를 찾아서 다시 떠나야 하는 걸까? 쫓겨나는 건가? 내 머리는 최악의 경우를 먼저 그렸다. 우리는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가 치안이 안 좋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냥 투베드룸이 없으면 별장에서 지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는 약간의 위로를 가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침에 먹은 치킨 버거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체크인을 기다리며 주문해 둔 피자가 도착해 있었지만, 두 시간 가까이 우리의 거처가 확정되지 않았고 내 손에 들린 피자는 다 식어 있었다. 우리는 우선, 별장으로 돌아와 식은 피자를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콜라는 달았다. 사람은 불안할 때 더 단맛을 찾는다고 했던가. 정확히 콜라만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씻었다. 하루 일정을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하고 해바라기 샤워대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한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래도 오늘 잘 곳은 있다.” 그 안도감이 나를 버티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도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웃프다.
나는 자연스럽게 2층침대 위로 올라갔고, 동생은 아래 침대에 누웠다. 우리는 누운 채로 내일을 준비했다. 담당자가 오면 무엇을 말할지, 우리의 요구를 어떻게 정리할지. 그리고 정 안 되면… 여기서 그냥 지낼지. 이곳이 무서워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동생과 함께 있으니 그곳에서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의 첫날밤은 영화처럼, 원하지 않은 장면으로 시작됐다.
그 밤은 우리의 여행에서 가장 긴 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