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뉴욕이라는 세계

(1) 강아지들마저 한데 어울리는 곳

by 윤예진

뉴욕 맨해튼을 걷다 보면 시간대가 무색할 정도로 강아지를 자주 만난다.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공원을 지나든 횡단보도를 건너든, 누군가의 발치에는 늘 작은 생명 하나가 따라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여긴 정말 뉴욕이다”라고 느꼈던 장면은 따로 있다. 세상의 다양한 강아지들이 한데 어울리는, 숨은 스팟 같은 곳.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South Street Seaport)였다.


뉴욕에 도착한 지 7일째, 8월 20일.

나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한 선셋 크루즈를 예약해 두고 항구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항구 주변에는 길게 이어진 벤치가 있어 누구나 앉아 쉬기 좋았다. 그 앞에는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당연히 ‘크루즈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은, 알고 보니 강아지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목줄을 풀고 뛰노는 강아지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불독, 닥스훈트, 사모예드, 웰시코기… 사진으로만 보던 아이들이 실제 크기로 내 앞을 지나갔다. 강아지들은 서로 냄새를 맡고, 뛰고, 엉켜 놀고, 잠깐 다투는 척하다가도 금세 다시 섞였다. 반려인들도 어딘가 익숙한 얼굴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웃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 장면을 한참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사람도 많고 강아지도 많은데,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가장 놀라웠던 건 “목줄이 풀려 있는데도 불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험해 보이거나 공격적인 순간이 없었다. 물론 모든 상황이 완벽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날 내가 본 장면은 신기할 만큼 차분했다. 반려인이 부르면 강아지들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공이나 원반을 던지면 알아서 가져와 손에 올려놓기도 했다. 마치 ‘이 공간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는 규칙을 서로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라면 목줄을 푼 강아지를 만나는 순간, 사람들 마음속에 먼저 경계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뉴욕의 그 광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였다. 목줄이 풀려 있다는 사실이 “무질서”가 아니라 “신뢰”처럼 보였다. 강아지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서로를 믿어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신뢰는 ‘일’이라는 형태로도 보였다.

뉴욕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맨해튼 거리 한복판(Union Square근처)에서 한 사람이 여러 마리의 강아지를 이끄는 장면을 몇 번이나 봤다. 한 손에 목줄이 여럿 모여 있고, 줄은 부채처럼 퍼져 나가 각각의 강아지에게 이어진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강아지가 훈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걸 매일 반복하며 익히게 만든 사람의 손길도 느껴졌다.


나는 그날 항구에서 닥스훈트를 만났다.

원래 특정 견종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취향이 뚜렷한 편은 아니었는데, 닥스훈트는 다리가 짧아 배가 땅에 닿기 직전인 형태가 너무 만화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난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어 부르고 손을 내밀었다. 강아지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다가와 내 손등 냄새를 맡았다. 허락받은 인사였다. 그 작은 순간이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강아지에게서만 오지 않았다.

강아지를 매개로 사람들이 아주 얕게라도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마디를 건네고, 강아지의 이름을 묻고, 서로 웃고, 발길이 닿는 대로 멈춰서 있다. 깊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연결. 무관심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종류의 도시였다.


그날의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는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선셋 크루즈를 기다리는 항구였고, 햇빛은 물 위에서 반짝였고, 그 앞 광장에서는 서로 다른 강아지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뛰어놀았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강아지들이 한데 존재하고, 잠깐 스쳤다가, 다시 흩어진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머무르는 도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섞이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힌 도시. 그곳은 뉴욕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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