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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28. 2024

이토록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이토록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압축적이어서 시적으로 느껴지는 문장들은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것들에 더 오래 머물게 했다.


소설은 석탄을 파는 '펄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는 겁 많은 소시민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정도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불안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펄롱은 거리에서 딸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걱정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의 불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그가 사는 마을에는 직업학교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수녀원이 있다. 세탁소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떠돈다. 마을 사람들에게 세탁소는 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를 받는 곳이기도 하고, 수녀들이 아기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고 돈을 버는 곳이기도 하다. 직업학교와 세탁소는 담벼락 하나로 나뉘어 있다.


어느 날,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갔다가 펄롱은 남루한 차림의 소녀들을 보게 된다. 이때 충동적으로 펄롱에게 다가온 소녀 한 명이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도록 강으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펄롱은 수녀원의 많은 것을 본다. 현관의 자물쇠와 담벼락에 꽂혀있는 깨진 유리조각 같은 것들을.


펄롱은 이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미혼모였던 어머니와 어린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미시즈 윌슨.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라 펄롱은 어린 시절부터 결핍을 느껴왔다. 펄롱은 자신이 불행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펄롱의 어린 시절은 매우 특별했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를 통해 드러나는데, 펄롱 모자를 돌봐주었던 미시즈 윌슨은 개신교, 펄롱 모자와 일꾼 네드는 천주교도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기나긴 식민사에서 그들의 종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미시즈 윌슨의 영향으로 펄롱은 뼛속까지 천주교도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 즉 이방인이었으며, 그에게 끊임없이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평범한 아일랜드인이 볼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를 그는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직면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세탁소의 소녀들을 통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는 수녀원의 석탄창고에 갇혀 있었던 '세라'를 집으로 데려옴으로써 세라를 돕는다. 펄롱은 세라를 구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면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자신이라는 낯선 타자와 통합을 이루어낸다.


펄롱이 세라를 집으로 데리고 온 행동은 결국 종교와 결탁한 국가권력에 도전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서 세라와 함께 서 있는 펄롱을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한다. 소박하고 조심스럽게 삶을 꾸려왔던 초반 펄롱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는 엄청난 변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불안을 통해 사회와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부조리와 균열, 자기모순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펄롱은 분명 변화했다. 그러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그의 변화는 작은 것이다. 보다 큰 변화는 내면적인 것이며 드러난 것 아래에 감춰져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그의 변화는 '사소한 것'이면서 '순진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소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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