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꿈이었을까?
한때 셰익스피어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비극에 울고, 희극에 웃었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비극에 더 큰 울림을 갖겠지만, 어렸던 그 시절에는 해피엔딩이 좋았다. 주인공들은 작은 촌극에 허우적거렸지만 다행히 잘 벗어났다. 『햄릿』의 대사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보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라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대사가 더 와닿았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에 목숨을 걸었지만, 한바탕 꿈을 꾸고 난 후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는 마녀가, 희극에는 요정이 숨어있듯이,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 왕과 퍽의 장난이었고, 모두가 좋은 결말이다.
이숲오 작가는 작년 여름에 두 번째 작품인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출간했다. 작년 여름에 여러 생각을 하며 잘 읽었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길거리 낭송가 소년은 시 낭송 대가인 노인을 만나 낭송에 대해 배운다. 나는 처음 『꿈꾸는 낭송 공작소』을 읽었을 때는 소년과 노인에 작가가 투영되었다고 보았다. 소년은 시 낭송가인 이숲오 작가의 과거이고, 노인은 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보니 노인은 없다. 노인은 소년의 꿈이다. 소년의 한여름의 꿈에서 만난 ‘퍽’이다. 그러고 보니 제목에도 ‘꿈’이 암시되어 있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이 되던데,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확실히 좋은 책인가 보다. 3회 독을 한다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이숲오 작가는 열두 개의 목차를 열두 달로 나누어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북토크를 한다. 7월은 7장 「느리게 느리게」이다. 그래서 주제는 ‘느림’이다. 작가는 우스갯소리로 오늘의 주제는 ‘느림’인데 가장 빠른 KTX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에 왔다고 나를 소개했다. 3시의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아침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의 7장은 노인이 소년에게 쓰는 손 편지로 시작한다. 잉크를 채워서 쓰는 만년필로 노인의 경험과 생각을 흰 종이에 써 내려갔다. 편지를 쓰는 도중에도 가끔 펜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완성된 편지는 등기도 아닌 보통우편으로 보낸다. 생각보다 빠르게 편지는 소년에게 전달되었고, 소년도 편지로 답장을 보냈다. 두 사람의 사이에 중요한 구절은 ‘천천히 가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이다. 작가는 이어서 사람이 걷는 데는 삼천 번의 넘어짐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령 없이 순수한 노력만으로 얻은 결과이다. 7장에서도 소년은 노인의 꿈을 꾼다. ‘깜빡 선잠에서 눈을 뜨니 늦여름의 오후 햇살이 구아바 잎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방 안에 힘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숲오 작가는 ‘느림’에 대해 말한다. 이 시대에서 ‘느림’은 쓸모없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름’에 의해 소외되었다. 하지만 ‘빠름’은 나를 바로 볼 수 없다. 시대에 편승하여 빠르게, 계속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KTX는 시속 300km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KTX의 열 칸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KTX 속에 타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창문 너머 들판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사이에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반대로 ‘느림’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집중하고 자연을 바라본다. 식물에 정면은 없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작가다운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 설명하는 것을 지양한다고 말한다. 정답 같아 보이지만, 자극적이고 공허하며 남는 것이 없다. 7장 시작에서 나온 보통 우표를 붙인 편지는 ‘느림’의 대명사이다. 시간을 두고 전해지는 편지의 행간에서 명료함이 보인단다.
북토크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다소 생소한 자리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좋은 자리에서 받은 온화한 느낌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같이 신청했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작년부터 읽으라고 권했으나 학업과 다른 책에 밀려 미처 읽지 못하고 북콘서트에 참석하여 사실 작가에게 매우 미안했다..딸아이는 특히 아기가 걷게 될 때까지 삼천 번 넘어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요령 없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아이가 진심에 대해 터득한 듯하다. 딸은 연필을 깎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어른들의 말에는 의아해했다. 나도 그때는 그랬다. 손의 힘은 약하고 칼은 날카로워 연필을 깎을 때마다 흑심이 부러졌었다. 딸은 후다닥 『꿈꾸는 낭송 공작소』 7장을 읽어내더니 재미있다며 맨 앞으로 돌아가 1장을 넘겼다.
북토크는 2시간 넘게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글과 목소리로만 만나던 이숲오작가를 실제로 만나서 좋았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선물에 감동하였다.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느림’에 대해서 생각도 했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빠르게 살았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를 통해 제대로 ‘느리게’ 사는 이유를 생각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참석자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나오는 길에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본다.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내가 보인다. ‘느림’은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 여름의 추억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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