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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수미 Aug 29. 2024

해인사에서 하룻밤

템플 스테이 1박 2일

 

  좋았던 기억은 자꾸 그때를 부른다. 칠 년 전에 친구와 함께 보낸 해인사 템플스테이의 1박 2일은 사진첩에 꽂힌 사진처럼 언제든 떠올리면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난다. 가야산 해인사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템플스테이로 해인사를 골랐던 이유는 최치원 선생의 학사대 때문이다. 몰락하는 신라를 위해 애썼건만 결국 신라는 쇠락의 길을 걷고 최치원 선생도 방랑의 길을 걸었다. 최치원 선생의 발걸음 끝에 가야산 해인사가 있다. 최치원 선생은 가야산에 지팡이 하나 꽂고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단다. 그 지팡이에 뿌리가 생기고 나뭇잎이 나면서 ‘학사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날 학사대가 보고 싶어서 해인사로 발길을 향했었다.     


  언젠가 다시 해인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았고, 생각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기회가 왔다. 남편에게 해인사 근처에서 1박 2일 모임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에게 묻지도 않고 급한 마음에 해인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마침 해인사 프로그램에는 장경판전 순례도 있어서 일거양득의 마음이었다. 108배가 힘들다거나, 방에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던가, 채소뿐인 공양이라는 세 가지 난제는 있었지만, 아이들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선림원에 도착하여 법복으로 갈아입고 새터를 시작으로 템플스테이의 문을 열었다.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이신 현사 스님이 개구쟁이 같은 친근한 얼굴로 참가자들을 맞이해 주셨다. 서른 명 남짓의 참가자 중에 청소년은 우리 아이들 둘 뿐이었고, 갑자기 현사 스님이 아들에게 물었다. “몇 학년이야?” “중학교 일 학년이요.” 다시 딸에게 물었다. “몇 학년이야?” “중학교 이 학년이요” “중이? 나하고 동기네. 나도 중(衆)이야.” 갑작스러운 선문답 같은 말씀에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언어유희를 하신 거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현사 스님이 무슨 말씀만 하면 웃음보가 터져서 참지를 못한다. 시작이 좋았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스님께 인사하는 법은 배울 때는 더 재미있었다. “예. 스님”을 빨리하게 되면 “예. 스님” “예 스님” “예수님”이 된다고 하자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폭발했다. 해인사와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에 대해서는 자료 영상을 보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방법은 스님께 배웠다. 삼배의 의미가 부처님과 부처님 말씀과 부처님 제자에게 올리는 절이라는 것도 알았고, 접족례, 고두례도 새로 알았다. 칠 년 전에도 배웠던 것들인데, 그새 잊었는지 모든 것이 새롭다. 6시가 넘어가자 꼬르륵 거리는 배꼽시계에 맞춰 공양간에 갔다. 맛있고 건강한 나물들로 산사에서의 첫 식사를 한다. 잠시 쉬었다가 저녁 일정은 108 염주 만들기이다. 목탁 소리에 따라 절 한 번에 염주 한 알. 웃으며 시작했지만, 점점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고, 머릿속에는 염주 한 알 잘 꿸 생각뿐이다. 수북하게 쌓인 구슬이 줄어들수록 번뇌도 사라진다. 몸은 무거워지지만, 마음과 머리는 가벼워진다. 완성된 염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개선장군인 양 숙소로 돌아왔다. 산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새벽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 18분 45초. 법고의 우렁찬 소리는 가야산의 하루를 깨운다. 어두컴컴할 때 일어나 불전사물 관람과 대적광전 새벽예불에 참가하고 나오니 청동색이었던 하늘이 파란색으로 빛이 스며들어 밝아졌다. 아침 공양 후 해인사 탐방이 이어졌다. 현사 스님의 해인사에 대한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하늘에서 보면 배의 모양이라는 해인사, 사물놀이의 시작이 되었다는 불전사물의 의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 화엄의 사상이 210자로 만들어진 해인도(화엄일승법계도) 등을 보고 장경판전에 도착했다. 경건한 마음과 인류유산에 손을 대지 말하는 의미로 두 손을 가슴께에 합장하고 줄지어 장경판전에 들어간다. 팔만대장경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감격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팔만대장경 속에 담긴 염원이 받아들여졌을까. 끈질긴 40년 항쟁이 있었기에,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았지만, 끝내 자주독립국을 유지했다. 최치원의 학사대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다시 선림원으로 돌아온다. 템플스테이 마지막 일정은 대장경(복제품) 인경이다. 먹물을 조심스레 묻히고 화선지를 덮고 토닥토닥 솜뭉치를 두드려주니 하얀 종이에 검정 글씨가 배긴다. 어제 염주 만들기도 그랬고, 오늘 인경 체험도 생각을 비우고 온 정신을 한끝에 모아야 한다. 욕심부리면 먹물이 번진다. 부처님 말씀 한 장을 조심스럽게 말아 들고 숙소로 돌아와 법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바람처럼 지나간 소중한 시간이다.    

2017년 학사대와 2024년의 최치원

  내가 처음 해인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것은 2017년 가을이었다. 해인사 끄트머리 독성각(산신을 모신 곳) 옆에 늠름한 전나무가 서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전나무 밑동 위에 최치원 선생이 앉아 학과 노닐고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학사대는 2019년 가을 태풍 링링에 쓰러졌다. 최치원 선생이 꽂았다는 지팡이는 이제 설화로만 남았다. 태풍이 가야산 깊은 산속까지 영향을 미쳤을 줄이야. 아쉽고 아깝다.     

  아이들과 기차놀이하듯 해인도를 한 바퀴 돌다 보니 부처님의 말씀을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화엄(華嚴)’의 의미를 알 듯 말 듯하다. 우리 동네 방언에 ‘마음이 편하다’라는 표현으로 ‘신간 편하다’라고 한다. 어원을 찾아보면 ‘신간’은 ‘심장’과 ‘간장’을 의미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신간이 편해서거나 신간을 편하게 하려고 왔을 것이다. 결국 편한 신간을 위해서는 번뇌를 줄여야 한다.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면 바다가 거울이 되어 생각이 명료해지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해인삼매(海印三昧). 108 염주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정성을 쏟았듯이, 번뇌를 버리고 참에 집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현사 스님은 템플은 스테이, 절은 라이프라고 하셨다. 잠시의 ‘머무름’으로 부처님의 ‘생’을 알 수는 없지만,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다.

  아들은 내년에도 꼭 해인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고 싶다고 한다. 목에 걸린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내년에는 내가 중이가 되니까”. 현사 스님이 첫날에 하신 농담이 여태 남아, 누나만 스님과 동기가 되는 것이 부러웠나 보다. 내년에도 세 번째 템플스테이를 다시 해인사로 떠나야겠다. 108배도 힘들고 채소 반찬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사찰 체험에 콧노래 즐겁게 집으로 돌아온다.

템플은 Stay, 집은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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