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돈의 방패 밖에서도 아주 넓고 평온했다.
아버지의 가슴팍 왼쪽 주머니에는 낡은 마을금고 수첩이 들어 있었고, 큰 아들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번쩍이는 할리데이비슨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제 돈과 얽힌 우리 집안의 사연을 시작하겠다.
비가 몹시도 내리는 날, 빌라를 돌며 배송을 하던 중이었다. 박스들이 비에 젖을까 신경이 쓰여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가파른 빌라 계단은 이끼 낀 돌덩이처럼 미끄러웠다. 한순간 발밑이 허공을 찼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나는 빌라 계단 위로 고꾸라졌다. 충격으로 숨을 쉬지 못한 채, 한동안 차갑고 어두운 빌라의 1층 타일 위에 엎드려 낮은 신음을 뱉어냈다.
아련히. 닫혀 있던 철문 하나가 조심스레 열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고개를 내밀어 나를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철컹’ 하고 매몰차게 문을 닫았다. 그 무심한 문소리는 나는 지금 내 삶의 가장 낮은 지점까지 내려와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처럼 들렸다. 포근하고 안전한 돈의 방패를 벗어난 바깥세상은 이처럼 차갑게 위험하고 서러운 곳이었다. 간신히 추스르고 빌라 문을 나서니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온도가 낯설기만 했다. 택배를 돌리다가 나를 바라본 아내와 아들이 놀라서 다가오는 모습과 놀란 목소리들이 아득하니 들렸다.
문을 닫고 들어간 그 익명의 타인처럼, 돈에 취한 나 역시 상처 입은 가족들을 보면서도 이렇게 차갑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이 흔들린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죽어가던 노년의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이 되살아났다. 우리는 평생 세상에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갈구하며 산다. 에릭 호퍼의 말처럼, 평범한 일상이 엄마의 품 안인 것을 망각한 채 고립된 승리만을 갈망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패배자가 되기보다, 돈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짜 소중한 것들은 까맣게 외면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이 차갑고 어두운 빌라 바닥에 누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스물일곱 젊은 시절에 파주에서 한옥 세 채와 쌀집, 그리고 마을금고까지 소유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모든 영광은 파산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고, 부산으로 도망치듯 피신해야 했다. 그 후 평생 택시를 몰았던 아버지의 가슴팍 주머니에는 항상 너덜너덜해진 ‘마을금고 수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에 대한 미련이자, 힘겨운 현실을 벗어나 다시 안전한 돈의 방주 안에 탑승할 수 있으리라는 처절하고도 간절한 희망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평생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운전대를 잡으셨지만, 사채를 무서워하지 않는 씀씀이로 인해 우리 집안은 더 깊은 빚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집안의 장남인 내게 돈을 번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숙명이었다. 빚에 짓눌린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은 미래를 향한 사소한 꿈조차 사치스러웠다. 그저 돈을 벌어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했다. 사업에 뛰어들어 맨몸으로 자수성가한 성공한 사장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밥숟가락도 놓은 채 회사와 현장을 뛰어다녔고, 그 사이 가족들은 늘 돈과 성공이라는 장막 뒤로 가려져 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낡은 수첩에 집착하듯이, 돈이 방패가 되어 모든 위협으로부터 내 삶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것은 나를 갉아먹는 허상의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돈을 향한 나의 과도한 집착은 사실은 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에릭 호퍼는 꼬집었다. 강력한 명성이나 성공을 갈망하는 것은 현실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후 자신의 인생처럼 고생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무언가 말씀을 건네셨다. 하지만 나는 매번 마음속 깊은 거부감으로 그 목소리를 밀어냈다. 사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버지의 조언이 아니었다. 낡은 마을금고 수첩 속, 상실한 '돈의 방패'를 되찾으려다 거듭 실패한 그 흔적들. 그 여파로 닥쳐온 가난과 아버지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힘겨운 현실이, 나는 그저 지독하게 싫었을 뿐이다. 어쩌면 실패에 대한 조언보다 따스한 위로나 손길이 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평범한 저녁, 큰아들이 불쑥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영국식 짧은 머리에 핏한 검정 티셔츠를 입고 할리데이비슨 앞에 선 50대 유튜버가 있었다. 아들은 그런 아빠를 가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돈과 정성으로 치장한 그 세련된 젊음이 어색하기만 했다. 며칠 뒤, 배송지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 아저씨는 자식이 바라는 건 오직 '애 봐주는 것'과 '돈'뿐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자식의 결혼 때 1억 5천만 원을 건넨 것으로 서로의 '돌봄 인연'을 정리했다고 한다.
자식이 동경하는 부유하고 화려한 아빠의 모습과 돈 앞에서 비정해질 수밖에 없는 오늘날 부모가 처한 현실, 그 극단적인 두 풍경 사이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나를 닮아 야망이 컸던 큰아들은 유명한 IT 업체에 입사했다. 자신감에 차 있던 그런 아들과 어느 날 전화로 갈등하고 말았다. 회사 근처로 이사 가는 문제로 이런저런 상의를 하던 중에 가볍게 아빠가 경제적으로 좀 지원해 주면 안 되느냐는 말에 나는 정색하며 대답을 해버렸다.
“엄마 아빠 노후를 너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다.”
그것은 내가 겪었던 아픔을 나의 자식에게는 결단코 지우지 않으려는 나의 결심이자 최선이라 믿었으나, 아들은 이해하면서도 서운해서 화를 냈다. 나는 도와줄 수 없는 처지가 서글퍼졌고, 아들은 농담처럼 던진 말에 냉정하게 선을 긋는 아버지가 너무 서운했다. 돈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상처를 받았다. 그때 문득, 과거의 장면이 겹쳐졌다.
아들이 안타까워 조언을 건네려던 나의 아버지와, 그럴 때마다 지금의 큰아들처럼 쏘아붙였던 젊은 날의 나.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입술을 떼는 순간에는 날 선 갈등의 불꽃을 튀겼다. 문득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하는 말과 스스로에 대해 하는 말 가운데, 과연 어떤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하는 물음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내뱉은 말이 금방 잊힐 것임을 알기에 무책임할 정도로 자유롭게 언어를 휘두른다. 그 가벼운 자유 속에서 내뱉은 경박한 말들이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서로의 가슴에 상흔을 남긴다. 지금 아들과 나 사이의 말이란 존재는 더 이상 마음을 잇는 다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자존감을 난도질하는 날카로운 '소음'이었고, 그 파편들만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채울 뿐이었다.
“제발 그만하세요! 이젠 알겠다고요!”
수십 년 전 내가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던졌던 그 날카로운 독설들이, 이제 내 아들의 목소리를 빌려 내 가슴으로 정확히 되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아픈 독설을 들어야 하는, 비극적으로 닮아버린 부자(父子)였다.
어린 아들들에겐 내 모습은 살가운 아버지가 아니라 비판자이자 징벌자였다. 아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선호하는지조차 몰랐고, 사춘기시절 힘겨워하는 시기에도 잠시 살피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 무정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저 돈이라는 방패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는 맹신에 사로잡혀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 살점들을 도려내고 있었다.
내가 사업에 성공했다면 과연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까. 돈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살아온 걸까.
돈은 관계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단단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모든 유대감이 사라진 '유동하는 현대'라고 정의했다. 돈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상대가 더 이상 경제적 이득을 주지 못할 때 급격히 와해되는 취약성을 가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치유하는 것은 돈이 주는 간편하고 편리한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몸으로 소통해야 하는 고통스럽고 갈등하는 불편한 과정 속에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화장장에서 치솟는 불길 속으로 아버지의 인생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팔십 평생의 고단함이 한 줌 재로 변했을 때, 나는 아버지가 큰돈을 들여 시술받으셨다던 치아를 보았다. 재 속에 남은 그것은 그저 검게 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철제 조각일 뿐이었다.
돈의 익숙함도, 편안함도 우리의 죽음을 덮어주지는 못했다. 활화산 곁에 사는 농부들처럼 우리는 늘 불안과 불편을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 삶이란 결국 포기하기 싫은 그 익숙함을 내려놓는 연습을 아파도 해내는 과정임을, 아버지가 담긴 유골함의 온기를 느끼며 깨달았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최백호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스토너가 생의 끝에서 발견한 것이 오직 '무지(無知)'뿐이었듯이, 나 역시 알량한 지식과 돈으로 삶의 구멍을 메우려 했으나 그럴수록 결국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 무(無)로 쪼그라든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스무 살, 나의 청춘은 늘 숨이 찼다. 가슴 한복판에 바윗덩어리를 얹은 듯한 답답함이 밀려올 때면, 나는 한 시간을 넘도록 꼬박 걸어 푸른 바다 앞에 섰다. 그 시절 내가 아버지에게 바랐던 것은 화려한 지원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넉넉한 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논리로만 나를 훈육하려 하셨고, 우리 사이에는 날카로운 소음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바다는 달랐다.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온 파도는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내가 짊어진 무게를 묻지 않았고, 그저 쉼 없이 밀려오고 가며 내 가슴속 응어리를 씻어내 줄 뿐이었다. 한참을 서 있으면서 지켜보노라면 터질 것 같던 가슴이 서서히 풀어졌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그 살가운 포용을, 바다는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건네고 있었다. 거대한 푸른 물결이 나를 가만히 안아주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은 화려한 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머물며 온몸으로 존재를 받아주는 침묵 속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틴 부버는 사랑이 상대를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책임이라고 말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매듭은 돈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몸으로 소통해야만 풀어지는 지루하고도 불편한 과업이다. 돈이 없어도, 세련된 화술이 없어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가만히 입을 닫고, 고통스럽지만 진실한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 내 아이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경이로운 순간을 기다려 본다.
명절에 큰아들이 결혼할 여자친구를 데리고 찾아온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지닌 마음의 짐들을 말없는 침묵 속에 가만히 품어내는 바다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젊은 날의 내가 힘겨운 날이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던 그런 바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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