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송장 위로 시(Poetry)가 내려앉을 순간이면

노안과 상실이 가르쳐 준 인생의 의미들

by 코나페소아
영화 <옥스퍼드에서의 날들>에 나오는 보들리언 도서관을 묘사함

그네를 탄다.

허공에 두 발을 띄운 채 그네를 탄다.

삐그덕, 그네를 따라 앞뒤로 오가는 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과거로,

다시 또 미래를 슬며시 넘나 든다.


언제나 현실을 사노라 말하지만,

인생은 과거와 미래를 그네처럼 무수히 오가며

오늘을 관통하듯 흘러가곤 한다.


​우리는 항상 내 인생의 다음 장, 그 '다음 챕터'가 무엇일지 늘 고민하며 살아왔다. 이 고생만 끝나면, 이 배송만 마치면 찾아올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고 선택하느라 정작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은 늘 건너뛰어야 할 과정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노라고.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하지만 현실 속 이런저런 상실감으로 인한 후회와, 때론 위로를 바라며 과거로 시선을 돌리거나, 알지 못하는 불안감으로 미래를 조심스레 더듬곤 했던 수많은 밤들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이란 끝을 확인하기 위해 빨리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한자, 한자씩 홀로 힘겹게 써내려 가는 한 편의 '시(Poetry)'였음을.

이른 새벽마다 졸리고 지친 몸을 일으킨다. 가족들과 함께 마실 물과 음료를 준비하고, 난로를 피우고, 아내와 장보기, 택배를 마친 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누던 이런저런 대화들. 그리고 칡흙 같은 어둠 속에서 배송하던 우리를 비추어 주던 한없이 크고 노랗게 빛나던 보름달.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작고 소소했던 이런 일상의 파편들이 급변하는 거친 삶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며 남겨놓은 크고 작은 폐허 속에서 우리가 견디고 버티게 한 물과 양식이 되어줬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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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택배차 공간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입니다. 저는 세상을 읽으며 글을 쓰는 몸글 사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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