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2개, 화장실 1개, 세탁실 1개, 앞베란다, 그리고 거실과 주방. 우리의 신혼집은 76제곱미터의 구축아파트이다.
안방은 침대와 화장대로, 작은방은 내 재택근무를 위한 책상과 붙박이장이 채워져 있다. 거실이라고 하기엔 방보다도 좁은 거실은 소파와 TV, 그리고 서랍장이 있다. 그마저도 주방과 맞닿아있어 소파 옆에 큰 냉장고장이 자리하고 있다.
둘이 살기엔 문제없는 집이지만 집순이, 집돌이인 우리 부부에겐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의 취미생활'.
집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우리 부부는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소박한 취미를 갖고 있다. 남편은 건담 만들기, 피규어 모으기, 나는 레고 만들기.대체로 우린 무언가 스스로 만들고 장식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만드는 시간만큼은 잡생각이 없어진달까.
(BEFORE) 퇴근 후 힐링타임
신혼 초반엔 그저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접이식 상을 펴고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맥주 한 캔과 함께 레고를 펼쳤다. 신혼 초의 부스트 덕인지 허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딱딱한 바닥에서 몇 시간을 각자 취미에 열중하며 힐링을하곤 했다.
아직 다 꺼내지도 못한 내 레고들..
딱딱한 바닥에 앉아있는 것보다 먼저 느낀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만드는 즐거움만큼이나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보는 즐거움도 컸는데, 더 이상 이 집에 전시할 곳이 없다..!
TV 장식장 아래에 작은 레고들, 앞베란다에 남편이 자취할 적 쓰던 작은 장에 큰 레고들을 몇 개 두었지만 아직 놓지 못한 내 레고들과 남편의 건담, 피규어들은 창고에 방치되었다.
집이 넓었다면 고민이 없었겠지만, 필수적인 가구만 있는 미니멀한 집임에도 집이 좁아 장식장 하나 놓는 것도 고민이 됐다. 어디에 둬야 잘 뒀단 소리를 들을 것인가.
1) 전시공간 만들기
첫 번째 후보지는 소파옆. 소파와 냉장고장 사이에 살짝의 공간이 남아있었다. 다만 장식장이 들어가기엔 애매한 공간이라 남은 장식품들을 다 넣기엔 부족해 보였다.
두 번째 후보지는 거실 TV장 옆 남은 공간. 하지만 벽에 비디오폰과 전등 스위치가 있어 높이가 낮은 장식장만 가능하고, 현관에서부터 바로 보이다 보니 집이 더좁아 보일 것 같았다.
(AFTER) 신혼집을 지키는 헐크버스터
고민 끝에 정한 곳은 화장실 옆 공간!
자칫 지저분해 보일 수 있는 옆부분도 벽에 가려져 안 보이면서, 집에 머무는 곳 어디에서든 잘 보이는, 너무 작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에 장식장을 새로 넣었다. (참고로 임장 왔을 때 전주인분들은 이곳에 냉장고를 뒀었다.)
취미생활에 진심인 우리..
전시할 공간이 생기니 취미생활에 더 박차를 가해 지금은 남편이 좋아하는 피규어들과 내 레고들로 꽉 차게 됐다. 제2의 공간은 거의 창고처럼 쓰고 있는 작은방 붙박이장의 한쪽 문을 뜯고내부를 장식장처럼 꾸미려고 계획 중이다.
2) 만들 공간 업그레이드하기
신혼 초만 해도 식탁을 따로 두지 않고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 식사를 했었다. 그새 익숙해져서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도 없었고, 사실 주방에 식탁을 두기에비좁다는 점이 가장 크긴 했다. (그나마 넓어 보이게 절대 지켜..)
식탁을 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식사보다 취미생활을 위해서였다. 상을 펴고 몇 시간을 레고를 만들다 보니 목과 허리를 꽤나 숙여야 했고 양반다리를 한 다리도 가끔 저려왔다.
오히려 작아서 좋아..
사이즈 고민을 한 끝에 '오늘의집'에서 반타원 테이블과 의자를 구매했다. 최대한 좁은 주방에 크게 차지하지 않도록 몇 번을 줄자로 사이즈를 재본 후적당한 테이블을 골랐다.
대체 그전엔 식탁도 없이 어떻게 살았던 거지.. 잊고 있던 식탁의 편리함과 소중함을 오히려 구매 후에 느끼는 중이다.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편하게 취미생활을 누리고 있다. 원룸이나 우리집처럼 소형 평수에 산다면 반타원 테이블 완전 추천!
소박하게 삶의 질 올리기
주말엔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간식, 커피와 함께 레고를 만든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남편과 연애 때부터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린 가행부라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 우리끼리만 말하는 가행부라는 단어는 우리 부부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비록 남들처럼 드넓은 평수도, 신축 아파트도 아니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감을 느끼니 오히려 만족감은 더 높다.
각자 프라이드를 갖고 열심히 일하다가 퇴근 후엔 작은 반타원 테이블에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별것 아닌 것에도 삶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하고, 때론 각자 취미생활을 하며 매일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좁은 집에서도 충분히 취미생활이 가능하다.
작고 낡은 구축아파트에 불평불만만 하고 살 것인지, 이왕 살게 된 거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며 살 것인지. 뭐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