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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Mar 02. 2024

신혼 초 명절은 어떠셨나요?

Part23.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고부갈등..?

어느덧 결혼 2년 차 설 명절을 맞이했다. 1년 차와 달라진 건 여러모로 굉장히 스펙타클한 연휴였다는 것?




첫 번째 스펙타클은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에서 명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무척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결혼과 동시에 엄마와 연을 끊다시피 하면서 친정집에 간 적이 없다. 정확하게는 엄마가 있는 시간을 피해 잠깐씩 있다 올뿐이었다.

나는 내심 이 상황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간 엄마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언성을 높이던 것도 결혼과 동시에 없어졌고, 더 이상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어 행복지수가 인생 최대로 높았다.


그러나 행복지수만큼 다른 가족들의 불편함도 높아져갔다. 

가족 모임마다 동생과 아빠는 우리 부부와 밖에서 한 번, 엄마와 집에서 한 번씩 따로 모여야 했고 키우던 강아지가 보고 싶어 친정에 들리고 싶을 때면 늘 동생에게 엄마가 언제 나가는지 물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씨암탉도 아닌 흔한 밥조차 얻어먹어 보못하고 고집 센 나와 장모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진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이번 설엔 집에 가겠다고 선포했다. 혹시나 과거 얘기부터 꺼내며 분위기가 삭막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웬걸, 명절에 생일이던 남편생일파티도 하고 강아지의 재롱도 같이 보며 꽤 즐거웠다.


역시 집밥이 최고군

그동안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어찌저찌 흉내만 냈던 내 음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다리 휘어지게 밥상을 준비해 준 것도, 결혼 후 없앴던 내 방 침대 대신 두터운 토퍼를 깔아 둔 것도, 이젠 사위와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어색한 분위기 없이 스무스하게 넘어간 것도. 모든 것이 좋았고 고마운 명절이었다.




사실 이 글의 메인은 두 번째 이야기다.

친정에서 기분 좋게 쉬게 온 저녁, 시부모님과의 영상통화가 화근이었다.


남편과 저녁에 소맥을 마시며 회포를 풀다 남편 생일 겸 명절 인사 겸 미국에 계시는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와 근데 OO이는
왜 이렇게 후져졌어, 그럼 안돼~



??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서로 그간의 안부를 얘기하고 있던 찰나, 시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시부모님도 약주 한 잔 하시다 전화를 받으시긴 했지만 아무리 술을 드셨어도 이게 할 말인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내게 살이 좀 찐 것 같다며 여자는 계속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재혼을 하시고 아직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저 미국스러운(?) 솔직함이 있으시구나 생각하고 넘겼었다.



이쁘기만 하다, 보는 눈이 없다 등 옆에서 수습하시려는 어머님의 말씀에 더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웃던 표정 그대로 멈춰있었다. 남편이 내 표정을 살피며 영통이라 그렇다, OO이 살 많이 빠졌다고 옆에서 말하는데도 난 일시정지 상태 그대로였다. 누가 보면 사진인 줄 알 정도로.


당황스러움에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고 마셨던 소맥의 기운인지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내가 왜 뵙지도 못한 분께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대놓고 저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건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아 눈물이 났다.


빠르게 얼굴을 정리하고 다시 핸드폰 앞에 앉아 웃는 얼굴로 한 시간가량의 통화를 마쳤다. 이후 남편과 나 둘 다 이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게 민망해서, 남편은 아마 얘기를 꺼내면 내가 더 상처받을까봐가 아니었을까 싶다.



알쓰인 남편은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맥주 한 캔을 더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바보같이 웃기만 했는가! 무례한 건 무례하시다고,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쁘다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한편으로는 어머님과의 재혼이 초혼이시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아들과 며느리가 생긴 상황이니 우리를 대하는 게 서투실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빨리 친해지려고 하신 말씀이려나.


내가 포용력이 좁은 것인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더 이상 통화하고 싶지 않다. 부족한 나를 너무 예뻐해 주시고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 나는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아버님 말고 어머님이랑만 통화하고 싶다.



후후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고부갈등인가. 흔히 고부갈등은 시어머님과의 갈등인 줄 알았는데 시아버님과의 갈등이라니. 아직 신혼 초반이니 앞으로를 위해 다음엔 참지 않고 말씀드려야겠다. 어떤 게 나으려나..


"아버님, 그렇게 말씀하신 거 저 기분 나빠요!"

"아버님, 요즘은 그런 말씀하시면 (통통이들에게) 저항받으세요!"

"아버님, 저 불편해요. 그런 말씀은 속으로만 하세요!"


어렵다.. 일단 살부터 빼야지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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