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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Mar 11. 2024

동료의 양면성을 본 적 있나요?

Part22. 누구냐 넌

24년 연봉협상의 여파로 요즘 블라인드 우리 회사 게시판이 뜨겁다.

이걸 인상이라고 주냐,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간다 등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댓글 보는 재미가 있어 요즘은 루틴처럼 자기 전에 어플을 켠다.


가끔 수위가 세고 재밌는 글이 올라오면 친한 동료들과 안주 삼아 얘기하곤 한다. 참 논리 정연하게 잘 쓴 글도 있고 재밌는 필력에 감탄하는 글도 있지만, 논지 없이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거나 앞뒤 없이 비난만 하는 글을 볼 때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정도면 왜 이 회사에 다니는지 싶을 정도.




그 글 보셨어요?



얼마 전 동료 A가 핫한 글이 올라왔다며 얘길 꺼냈다. 한참 그 주제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분한 건지 A가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했다.


"저 진짜 너무 어이 털려서 댓글 달았잖아요."

-(everyone) 뭐라고 달았는데?


당시엔 그저 다 같이 웃고 넘긴 안주거리였다. 며칠 후 블라인드 어플을 켰을 때 문득 A가 알려준 핫한 글이 생각났다. 역시나 욕으로 뒤덮인 생각보다 수위가 센 글이라 흥미롭게 읽던 찰나, A가 썼다는 댓글이 보였다.


'이 사람이 이런 식의 말투를 쓴 적이 있나?'

보자마자 흠칫했다. 말 그대로 악플러의 수준이었다. 좋게 얘기해서 돌려 말한 거지 그냥 돌려 깐 수준의 댓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정도로 활발히(?) 댓글을 남길 정도면 혹시 내가 인상을 찌푸렸던 글, 이 정도로 회사가 싫은데 왜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 싶었던 글들의 주인은 아닐까.


찾았다! 사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글 몇 개만 스크롤해도 그의 아이디가 보였다. 회사가 한심하다, C레벨들이 무능하다, 회사 행사 대체 왜 하냐, 이 회사에 온 내가 싫다, CEO의 변명이 기대된다, 퇴사자들이 왜 많은지 모르냐 등등.. 앞서 생각했던 논지 없이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앞에서는 세상 긍정적인 면만 보이던 사람이 익명에 숨어 신랄하게 글을 올렸다고 생각하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일이 많아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따뜻한 말을 해주고,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거라던 아무도 시키지 않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던 그였다.


하긴 연예인들이 악플러들을 고소했다는 기사만 봐도 가해자들은 세상 평범한 사람들이었지.. 이렇게 가까이에 실존할 줄이야.



회사에서 앞뒤가 다른 사람을 참 많이도 보는 것 같다. 뭐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었겠냐만 언제 마주쳐도 놀랍고 적응이 안 된다. 그나마 이렇게 바보같이 들통이 나는 사람들은 다행이다. 뒤늦게 뒤통수 맞은 경우도 있었으니.


분명 난 내일도 그와 반갑게 인사할 것이다. 속으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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