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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Jan 31. 2024

이혼일기(48)

성격장애

가사조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조사관은 왜인지, 내가 임신했을 때 어머님께 "더이상 어머니 며느리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문자를 보냈던 사실을 모든 일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사건을 말하면, 그것이 그 일의 전이냐 후이냐를 캐물었다.

듣다듣다 못해서.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왜 자꾸 그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하고 성질을 좀 섞어 되물어버렸다.

내가 반격하자 조사관은 꼬리를 내리는 형국이다. 아니 그래서가 아니고 그냥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거에요.. 라고 하더니 이내 혼자 육아를 하며 공부했을 때 어땠는 지를 말해보라고 했다.

 왜..?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저런 이야기하면 안되는 건가?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이 사람마저도 그 행동을 가지고 꼬투리 잡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
.
.

그 때, 임신 6개월이었을 때. 이제 제법 배도 부른 상황에서 남편은 나에게 진지하게 CT를 찍으러 가자고 했었다.

사건의 발단은 남편을 감싸고 돌던 어머님앞에 혼자 앉아 실컷 혼이 났던 것이다  남편은 당연히 남의 일인 듯 나가버렸고, 당황해서 한마디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던 나는 돌아와서 남편에게 화를 화를 냈다.  그리고 어머님께 저런 문자를 보냈었다.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상황은 그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니, 그 이후로 많은 일을 겪은 지금 답변서에까지 그 장면을 넣은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너 친구도 없어. 나랑 결혼해서 사는 동안 특별히 챙겨 만나는 친구가 없잖아. 너 성격장애같아. 

라고 하는 말을 정말 어이가 없어서 흘려들었었다.

 친구의 유무는 결혼식 사진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둘다 일을 하지 않아 직장동료가 올 일은 없었지만 난 연락하던 중고등대학 동창과 아르바이트 했던 곳의 친구들이 거의 모두 와주어서 내 하객만 40명이 넘었다. 그는 그 때 다니던 독서실 선후배 다섯과 서로 연락도 잘 안하지만 동창회 처럼 엮여있는 동네친구 이 전부였다.
  
 그 집안 축의금 받아줄 친구도 없어서 내 남자후배를 그걸 시켰을 정도인데, 설마 진지하게 저런 생각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어느 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성격장애 관련 책을 사고 내 번호로 포인트 적립을 한 문자가 왔다.

 이사람.. 진심인 것 같은데....?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던 날 저녁, 그는 나를 식탁 앞으로 불러 앉혔다.

 내일 병원으로 CT를 찍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임산부인데, 6개월의 임산부이며 그 주 토요일은, 그 부른 배를 하고 또 시험을 보러 가야하는 날이었다. 배가 불러서도 차마 놓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시험을 보러가야 하는 아내에게. 며칠 전에 2차 기형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양수검사를 하고 온 아내에게,

CT를 찍자고 했다.

 도대체 출처가 뭐인지 이리저리 물어보니, 그의 가까운 로스쿨 낭인이 된 50먹은 혼자사는 남자 선배에게 받은 조언에 꽂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도서관의 책들을 훑었댄다. 그 얕은 지식으로 내가 성격장애. 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 어머니에게 어머니 며느리 하기 싫다는 말을 하다니, 그건 그의 상식으로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나를 정상인으로 볼 수 없어서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한 방식이 내가 정신병자. 라는 것이구나. 이게, 이 사람의 최선이고, 사랑의 방식이구나. 누군가에게 본인을 맞추는 것은 아예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 사람을 비정상으로 몰아가서 이해해야하는 것이 그의 방식. 이다. 이 사람은 매사가 그렇다.

 그 때. 심호흡을 하고 내가 물었었다.

만약에 가서 검사했는데 내가 성격장애가 아니면 어떻게 할건데.

- 그럼 내가 평생 사죄하며 살을거야. 

그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후에 내가 사과를 요구했을 때, 그는 그 때 본인은 그런 의심을 할 만했다고 항상 방어했다. 물론, 그 때 나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성격장애가 CT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야..  따지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논리적인 싸움은 불가능하다. 이 사람과 그의 어머니는 내가,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겨우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서 얻은 같잖은 지식으로 사람의 인생을 재단해버리로는 저 오만은, 더더욱 내가 이길 수 없다.

 .... 병원은 나 시험이나 끝나고 가자고 제안하였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 그 후에는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 때,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자보려고 애쓰던 그 밤에는 가슴과 배가 많이 아팠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저릿하면서도 묵직한 고통이라, 직감적으로 뱃 속의 아이도 내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더라도, 내 답답함과 미어지는 마음을, 이 참담한 기분을 아이가 그대로 전달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밖에 내지 않았다. 또 어떤 기상천외한 논리로 엮을 지 모른다. 뜻대로 안되니, 아이를 들먹거린다고.  방패세워 나온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이제 어떤 말도 내뱉기가 무섭다. 생각하는 것도 무섭다. 

입 다물자. 입 다물자.... 지금은 그냥 혀깨물고 죽어버릴 때니까. 가만히 있자. 찍소리도 하지 말자.


ㅡㅡㅡ

저 때 성격장애라는 소리는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서, 지금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요.

특히, 직장에서 신뢰를 받을 때. 동료들이 저를 믿고 좋아해줄 때. 즐겁게 지내다 보면

아주 가끔

 이것봐! 나 성격장애 아니라구.. 아니라구..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데.. 내가 정말 얼마나 좋은 애인데...

 말하고 싶어요.

사실 그게 꿈을 이루지 못한 채로 자신을 의심하며 시들어갔던 저에게 하는 소리인지, 본인의 가족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다며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갔던 그에게 하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가사조사는 말그대로 "조사"여서, 소장이나 답변서에 쓰인 내용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맞춰보는 작업.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조사관에게, 그가 매형의 직장에 다녔다는 말은 거짓이며, 회사 주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출근경로는 어떻게 되었는 지를 물어본다면, 절대로 대답 못할 거라고 했었어요. 이렇게 상대의 거짓을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밤이 깊었어요. 다음엔 좀 더 밝고 즐거운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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