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47)

법원가는 길

by 도미니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요즘이야 보이스피싱 건도 있어서 많이들 그랬지만 인간관계가 없다시피했던, 닫힌 채로 무표정하게 살던 나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옛날의 인연도 다가올 인연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내 초라한 모습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면서도 시어머니의 전화에 활짝 웃으며 즐거운 톤으로 대답하는 것이, 정말 괴기스럽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가족의 상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이 기괴한 구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모두에게 있는데) 나에겐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모르는 전화도 잘 받는다. 나는 더 이상 폐쇄적으로 살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자부심과 자존감이 살아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모르는 번호가 뜨고, 이전에 느낀 공포감이 아니라 누구지? 하는 가벼운 궁금증으로 전화를 받으니 가사조사관이라고 했다.

이혼합의가 되지 않으면 가사조사란 것을 받아야 한다. 둘이 나란히 조사관앞에 가서 이야기 하는 과정을 한달 간격 3번 정도 한다고 들었다. 아 이제 그거 할 때가 또 되었구나.... 조사관은 애초에 남편은 파견이라 3주간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으니, 나만 먼저 하자고 제의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같이 가는 것 보다는 혼자 가는 게 백번 낫지. 하지만 처음 변호사로부터 안내받기로는 일하는 사람의 경우 주말에도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물어보니 무뚝뚝한 조사관은 주말에는 제가 일을 안하겠죠? 하며 단박에 잘랐다.

재판은 안내받은 것과 다른 흐름들이 꽤많다. 대개 큰 줄기는 맞지만 자잘한 부분들에서 그렇다. 하지만 당장 아이를 맡길 만한 환경이 되지 않는 나에게 이건 자잘하지 않다. 그래서, 항상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야한다. 재정도 상황도 두 발자국 정도는 실수하거나 쉬어갈 틈을 마련해놓아야 당황하지 않고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

1호봉으로 11일의 연가를 받았고 아직 4일의 연가가 남았다. 허투루 쓴 적이 없이 꼭 필요한 때에만 아껴 아껴 쪼개어 썼다. 덕분에 아직 여유가 있으니 가사조사를 위해 하루를 떼어야 겠다.

평소 아기는 내 출근시간인 7시반에 등원한다. 자는 아이를 이리저리 굴려 옷을 입히고,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 채 역시 자는 채로 어깨에 떠메고 헉헉거리며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7시 27분.

아가! 일어나! 1등이야 우리 아가가 1등으로 어린이집에 왔어!! 와 정말 신난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1등을 해보겠어. 좋겠다아!!!

정신을 쏙 빼도록 호들갑을 떨고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뛰쳐나와 2차선 도로를 건너 바로 맞은 편의 회사로 간다. 7시 40분부터 직원교육을 해야해서 정말 열심히 뛰어가야했다.

이제 17키로인 아이를 안고 뛰다보면, 정말 살빠질 것 같아.... 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잠이 덜깬 아이를 걸으라 할 수도 없고, 이렇게 엄마와 뺨부비는 맛이라도 있어야 아침잠을 못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가실 것 같아서 였다.

가사조사는 오전 10시. 9시에 출발하면 되니까, 우리 아기 그 날은 8시반까지는 잘 수 있겠다. 와 좋구나. 이 생각으로 그 날을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사조사 유의사항을 알려주겠다고 몇번이나 변호사님과 통화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회식이 있고, 아무튼 이래저래 사정이 되지 않아서 가사조사 전날에야 간신히 문서로 정리된 주의사항을 받아 보았다.


[ 경제적 어려움은 양육권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말씀하셔도 됩니다. 혼인기간 중 아르바이트 했던 것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말씀하세요.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 기간은 어떘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야 재산분할에 조금이라도 반영이 됩니다. 조사관도 고시에 붙어 조강지처 버리는 프레임으로 볼 가능성이 커요. 공부하실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편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들 모두 이야기해서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적극적으로 말씀하세요. ]


아침, 나갈 준비를 모두 마쳐가는데, 충분히 잔 아이가 일어나 엄마를 부른다. 기지개를 켜면 무릎도 주무르고 팔도 주무르고 아주 오랜만에, 일어나는 아이의 순서에 맞춰주니 이렇게 평안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옷을 입히고 부슬비가 내려 장화를 신기고 우산을 들려 밖으로 나간다. 어린이집에 가려면 작은 공원 하나를 지나가야 한다. 아이가 잠이 깨고 충분히 자서 기분이 좋으니 안아주지 않아도 되는 구나.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첨벙첨벙 물장난을 하며 즐겁게 어린이집 가는 길.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아이와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돌아서면,

예전의 내가 나온다. 아직도 이 동네는 낯설고, 아이가 없다면 세상은 있을 이유가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들은 높고 험난하며 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할 힘이. 전혀 없다.

주여..... 주여, 도와주세요.. 제 입을 관할해 주세요.

창백한 표정으로 전철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양재역에 간다. 처음 왔을 때, 이혼 변호사 광고 기둥들을 보며, 저렇게 말끔한 얼굴로 가정을 벗어나라 권하다니, 정말 기괴하다 생각했었는데, 몇번 보니 또 그러려니가 된다. 이런 이상한 모양에도 적응 해서 살아야한다. 모두들 그러고 있다. 그러니, 나도 그래야 한다.

전처럼 헤매지 않고 길을 찾아 법원에 도착하고, 6층 조사실 앞에 섰다.

떨리는 손으로 물한잔을 받아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린다. 조사실이 양 옆으로 주루룩 있고 가운데 복도에 대기석이 놓여져 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와서 제각각 앉는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다들 아침부터 나와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

인생은 그 자체로 매우 기괴하다.

ㅡㅡㅡㅡㅡㅡ

저날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가는 데 누가 뒤에서 부르더라구요. 뒤를 돌아보니, 지금 있는 회사의 제일 높은 상사였어요. 일반 회사로 치면 '사장님' 이겠죠..?

앞에서 어떤 엄마랑 애기가 너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며 가길래 뒤따라오시며 한참을 봤대요.

제가 아무리 인생이 이상하다고 발버둥쳐도, 그래도 적응하며 잘 살고 있는 모양을 보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다보니, 안그래도 그런 척 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여유고 능력이라는 것을 이제 알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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