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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r 09. 2024

이혼일기(55)

월급

어째, 마음 뿌듯하게 기쁘고 즐거운 날은 없고, 베이스는 항상 서글펐다. 새해가 시작되었음에도 다른 때보다 더 기운이 빠지는 이유는

친정부모님과의 불화였다.
화두는 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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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붙고 아직, 교육은 받기 전. 합격소식을 들어 매우 기쁘기는 했지만, 난 계속 아이를 업고 버스를 타고 공원에 데려가고 뛰어다니며 같이 놀던 그 때. 그래서 내가 이게 시험에 붙은 건지 뭔지 개념도 없을 때.

내 월급이 화제가 되었다. 정말 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1) 남편은 내가 월급을 받게 되면 시댁에서 받던 생활비를 받지 않을 거라는 말을 했다.

상의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일견 맞는 말이긴 하다. 부부는 경제공동체이고 한쪽이라도 경제적 능력이 생겼다면 지원은 받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생활비의 대부분은 남편이 쓰고 있는데. 난 그저 아이보는 식모처럼 얹혀서 숙식을 해결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용돈 조차 못 받고, 쟤는 나한테 우리 어머니가 왜 니 용돈을 주냐는 헛소리를 듣고 있는데.

내 월급이라봤자 교육기간에는 200을 조금 넘고 정식 임용이 되면 300이 넘는 정도밖에 안되는데.. 교육기간에 친정에서 아이를 봐주고 하면 그 비용은 어떻게 드리며, 저렇게 못을 박아버리면 내가 또 시댁의 지원을 요구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아주 좋지 않은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이건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싸울 자신이 없었다.

이 생각으로 머리가 몹시 복잡한 채로 친정에 갔는데.

2) 친정 엄마는 뜬금없이 니가 월급을 받는다고 그 쪽에서 생활비를 끊으면 안된다는 말을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야한다는 거지..? 만약에 돈을 안준다고 하면.. 어거지로 받으라는 건가. 왜 저런 엄마가 신경쓸 필요가 없는 걸 말하는 거지...?

 아빠는 또 그 말을 받아, 그렇다고 생활비를 끊으면 인간같지 않은 짓이지! 맞장구를 치는데.

 돌고 돌다가 내려진 결론은

시댁의 생활비 지원은 계속 받고 내 월급의 일부는 당신들에게로 와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시댁의 지원을 받지 않아야 내가 당당할 수 있다고 어렵게 흘리니, 그러면 당신들은 언제 호강(?)을 하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정에는 빚이 있고 노후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나도 벌어놓은 돈이 없어서 언니와 형부가 준 돈으로 결혼을 했다. 남편은 맨몸으로 시집오다시피했으니 노력봉사해야한다는 태도였고, 자존감이 바닥이던 나는 그에 암묵적으로 수긍을 하며 바닥을 기다가 결국 이 사태까지 와바린 건데.

아니. 이 사람들이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이야기를 하면 중간에서 자식인 내가 얼마나 힘들고 부담이 될 지는 생각을 안하는 거구나... 그만큼 생활고란 힘든 것일까.. 그렇긴 하지... 하는 서운함과 괴로움, 결국은 밥벌이를 진작에 하지 못했던 내 탓이라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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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저 이야기를 하면서, 너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으니 그걸 쓰고 지금부터는 시댁의 지원금에서 남는 돈은 모두 자신이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난.. 그럼 월급받을 때까지 마이너스를 쓰라는 말이야..? 아직 다섯달도 넘게 남았어.

- 응 나도 살 궁리를 해둬야지

무슨 살 궁리..?

- 나도 모아둔 돈이 있어야 살기가 편하니까.

돈이 없다면, 그리고 수입이 얼마 후에 예정되어 있다면, 마이너스를 쓰는 것은 타당한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니 통장에 꼴랑 이삼십만원이라도 당연히 내 몫인 지금 남는 돈을 매달 쌓아두고... 나는 마이너스를 쓰라는 거지 지금 ...???

아.. 니가 무섭긴 하구나. 나한테 생활비 안주는 게 당연하다고 굴어 왔는데, 이제 나한테 돈을 타서 쓸 상황이 되니까. 그대로 돌려받을 까봐 무섭긴 하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본인 차례가 되니, 모아둔 돈 없이 그동안 핍박했던 마누라한테 용돈 받아 살 생각하니 깝깝한 건 아는 구나. 애키우는 아내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내쳐두고, 양육수당 10만원으로 용돈을 하라고 당당히 말하더니, 입장이 바뀌니 무섭구나.

그래, 니가 나한테 한 짓이 있으니. 무섭기도 하겠지. 

그렇게 의사를 피력하고 나서도. 그의 헛소리는 계속된다.

뭐가 수틀리면 니가 시험에 붙었다고 내가 득보는 거 하나도 없다고 소리치고, 니가 시험 하나 붙었다고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는 소리가 툭하면 나왔다.

아..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이 앞뒤가 안 맞는 논리 속에서 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할까.. 앞으로 아이도 키우며 일도 해야하는 날이 머지 않은데.

 어느 쪽의 말이 맞고 틀리고는 떠나서, 아직 받지도 않은 월급이었다. 고시에 떨어지고 좀비처럼 살다가, 이제야 첫 월급이란 걸 받아보려는 나인데.

그런 내 월급을  중간에 두고 친정과 남편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외롭고 또 외로운 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의 이혼사유가 차곡차곡 쌓여갔던 밤.

ㅡㅡㅡㅡㅡ

친정과의 거리두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크게 싸우는 과정이, 이혼만큼이나 큰 상처가 되었어요.

그래도 이혼할 때는 부모님이 계시니 내 편이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든든했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편이 없다는 생각에.

지독하게 외롭고 슬픕니다.

하지만 이도 잘 이겨내야지요.  

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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