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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r 17. 2024

이혼일기(56)

외딴 섬

혼자 남았다.

부모자식이라고 해서 모든 일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허물을 감싸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로 독설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어찌 하지 못했다.

몇번 다투었고, 다투더라도 문제의 핵심에라도 접근했다면 좋았겠지만 그 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여러 지겹고 괴로운 과정을 거쳐 혼자 남았다. 아이와 정말 단둘이. 우리 둘만 남아버린 것이다.

처음엔 몹시 무섭고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그 시간을 지나야 했어서 주변 정리부터 했다.

1) 주말, 친정에 가서 하던 아이의 학습지와 미술학원. 그리고 내 운동을 모두 중단했다. 갑자기 안하게 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또 손해도 꽤 컸지만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일하는 것과 아이돌보는 것 외에는 에너지가 나갈 만한 것들은 모두 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2) 회사에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더이상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는 회식에는 1시간 정도만 식사를 하고 염치불구하고 먼저 나왔다. 허겁지겁 달려가도 아이는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놀고 있다.

3) 술자리가 아닌 회식에는 그냥, 데려갔다. 보드게임 한세트를 들고 가서 자리를 펼쳐주고 내 옆에서 놀게 하고, 나는 하얀밥을 김에 싸서 아이입에 넣어주며 놀이 상대를 해주며 회식에 참여한다. 중간중간 아이의 요구에 응하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집에 언제가냐고 묻는 아이에게 미안해. 조금만 더 있자.. 속삭이며 지내다보면

회사에는 민망하고, 아이에게는 미안하다.

세상 모든 것에 불편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지만, 나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힘들고 괴로워야 할까 궁금했지만, 언제나 현실은 제일 힘이 세서 그저 일단은 수긍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4) 이제 좀 할만하다... 싶으면 또 새로운 상황이 닥쳐왔다. 새벽출근이 필요한 날이 있었다. 나는 6시반에 출근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은 7시반에 시작한다. 이걸 어쩌지... 고민하다 홈캠을 주문했다. 감사하게도 만4돌이 지나니 아이는 한번 잠들면 거의 깨지 않았다. 긴가민가... 자는 아이 옆에 홈캠을 켜두고 출근을 했다. 아이만 두고 출근하는 길이 진공상태가 된 듯이 답답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회의를 하는 중간 중간 핸드폰을 무릎에 두고  틈틈이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딜까.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 쓸데없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밀어내 버린다.


방법이 없잖아!!! 그냥해! 그냥 하는 거라고!

 8시 반이 되어 모든 상황이 끝나고 아이의 뒤척거림이 잦아졌을 때 회사에서 5분 거리의 집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며 확인해보니, 세상에. 얘가 일어나서 앉아있다.....! 뭐라뭐라 말을 하다가 울상을 짓는 얼굴을 보고 나도 같이 얼굴이 허얘져서 문을 부수듯이 뛰어들어갔다.

아가!!!! 엄마 왔어!
- 어디 갔었어....
엄마 잠깐 쓰레기 버리고 왔어! 잘 잤어? 
- 엄마가 없었어..
응.. 놀랐어? 근데 엄마 항상 우리 애기 보고 있으니까 엄마가 만약에 없어도 아가가 엄마 부르면 엄마가 금방 달려올거야. 그러니까 놀라지 말고 기다리면 돼. 알겠지? 먼 데 가 있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안정시키고 또 서둘러 옷을 입히고, 빵 하나를 쥐어준 후 등원준비를 한다.

 전쟁같은 몇주을 보내고 있지만, 덕분에 1시간을 푹 잔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비온 뒤의 상쾌한 아침. 우산들고, 장화를 신고 공원에 생긴 얕은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즐겁게 어린이집을 가는 길.

 괜찮다. 할 만 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예수님, 저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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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모님은 아기를 워낙 좋아하고 또 얘를 예뻐하셨어요. 제가 괜찮다고 해도 굳이 오셔서 아이를 보겠다며 주무시고 가시고 그랬었습니다.

회식같은 때에는 정말 편하죠. 원래였으면 당연히 저럴 때도 오셨을 거에요. 하지만 그렇게 관계가 섞여가니, 어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자꾸 생겨났고..

처음엔 버림받듯이, 그리고 다음엔 제 의지로 억지로 떼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험한 말과 상황을 겪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분이시거든요.

힘이 몹시 들고 외롭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저는, 괜찮을 거에요.

오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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